관계/ 손현숙
도둑맞아 어수선한 내 집에 앉아
나는 왜 그 흔한
언니 하나 없는 걸까,
무섭다는 말도 무서워서 못하고
이불 둘둘 말아 쥐고 앉아서
이럴 때 느티나무 정자 같은
언니 하나 있었으면.
아프다고, 무섭다고, 알거지가 되었다고
안으로 옹송그리던 마음
확 질러나 보았으면.
언니,
부르는 내 한마디에
물불 가릴 것 없이 뛰어와 주는
조금은 무식한
아무 때나 내 편인.
- 『너를 훔친다』, 문학사상사, 2002.
감상: 근무지를 옮겨가면서 대학가 원룸에서 자취한 적이 있다. 반지하방에 공책을 펼쳐놓은 크기의 창문, 그것도 닫힌 채로 고정되어 문이라고 이름붙이기도 뭐한 곳에 살다가 벽 한쪽이 창문으로만 된 곳에 옮겨오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 창문으로 도둑이 들어와서 재산 목록 1,2위인 컴퓨터와 사진기를 가져가기 전까지는 그랬다. 뒤늦게 온 경찰은 건성으로 일 처리한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려고 하지 않았고 억울한 사실을 달리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아마 그때 느꼈던 감정이, 그랬을 것이다. 도둑맞은 것도 기분 나쁜 일이지만, 이곳에서 철저하게 혼자라는 사실이 무엇보다 쓸쓸한 일이라고.
시인의 집에도 도둑이 들었다. 빈집인 줄 알고 도둑이 들었겠지만, 혹 시인이 있었다 하더라도 도둑이 강도로 돌변하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 무섭다는 생각이 우선 드는 것이다. 조금씩 모은 돈이나 중요한 원고 등을 도둑이 날름 가져갔다면 그 상실감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생으로 앓는 수밖에 없다. 대개 몹시 아플 때 따뜻하게 내미는 손이 그리운 법이다. 자기를 자기보다 더 잘 알아주거나, 이번 일을 자기 일처럼 여기고 나서 줄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큰 위로가 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듯 보인다.
이기적인 욕심이겠지만(사람은 물론 다 이기적이긴 하다) 언제나 자기편이 되어줄 한 사람을 시인은 그려본다. 없는 언니를 불러서라도 옆에 누군가를 의지하고 싶은 마음을 내비친다. 시인은 맹목으로 편들어주는 사랑이 그리운 게다.
대개의 관계는 사람 사이 적당한 간격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 적당한 간격이란 게 편리할 때가 있지만 밋밋하기도 한 것이어서 내 편 하나 없는 외로움을 감수해야 할 때가 많다. 그럴 때면 한번쯤 꿈꿀 만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 나와 너 사이, 간격이 감쪽같이 사라진 상태를……, 그걸 사랑이라고 말해도 좋겠다. 시인이 바라는 것도 어찌 보면, 세상 허물을 다 덮는 사랑이 아닐까.(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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