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나무를 노래함/ 문태준
빛이 있고 꽃이 있는 동안에도 깊은 산속 강대나무를 생각한다
허리를 잡고 웃고 푸지게 말을 늘어놓다가도 나는 불쑥 강대나무를 화제 삼는다
비좁은 방에서 손톱 발톱을 깎는 일요일 오후에도 나는 강대나무를 생각한다
몸이 검푸르게 굳은 한 꿰미 생선을 사 집으로 돌아갈 때에도 강대나무를 생각한다
회사의 회전의자가 간수의 방처럼 느껴질 때에도 강대나무를 떠올린다
강대나무를 생각하는 일은 내 작은 화단에서 죽은 화초를 내다 버리는 일
마음에 벼린 절벽을 세워두듯 강대나무를 생각하면 가난한 생활이 비로소 견디어진다
던져두었다 다시 접어 읽는 시집처럼 슬픔이 때때로 찾아왔으므로
우편함에서 매일 이별을 알리는 당신의 눈썹 같은 엽서를 꺼내 읽었으므로
마른 갯벌의 소금밭을 걷듯 하루하루를 건너 사라졌으므로
건둥건둥 귀도 입도 마음도 잃어 서서히 말라죽어갔으므로
나는 초혼처럼 강대나무를 소리내어 떠올려 내 누추한 생활의 무릎으로 삼는 것이다
내가 나를 부르듯 저 깊은 산속 강대나무를 서럽게 불러 내 곁에 세워두는 것이다
*강대나무 : 선 채로 말라죽은 나무
- 『가재미』수록
-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백석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의 마지막 구절이다. 피붙이와 지기로부터 떨어져 혼자가 된 화자는 자신의 어리석음과 슬픔을 연하여 되새긴다. 시름과 고투의 장소가 된 방안에서 몹시 괴로워하면서 또한 그걸 견디어 내던 화자는 마침내 긴 어둠에서 조금씩 빠져나올 기미를 보인다. 갈매나무가 바로 그런 느낌을 갖게 해주는 상징물로 작용하고 있다.
문태준의 강대나무는 백석의 갈매나무와 꽤나 닮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백석이 절망의 끝을 지나오면서 갈매나무를 떠올렸다면 문태준은 삶을 지나오면서 수시로 강대나무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물론 더 절실하게 강대나무를 생각하게 될 때가 있을 것이다. 때때로 찾아오는 슬픔이나 이별을 알리는 엽서를 읽게 될 때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화자는 강대나무를 ‘죽은 화초를 내다 버리는 일’과 ‘가난한 생활을 견디는 일’과 관련짓는다. 죽은 화초는 생산적이지 못하면서도 자신을 과거에 붙들어 놓은 어떤 대상일진대 그걸 깨끗하게 털어버리고 싶은 것이다. 쓸데없는 것을 다 버리고 가난해져서 오히려 편안해진 삶이 강대나무가 표상하는 삶인 게다.
갈매나무나 강대나무는 곁에 일상으로 있는 존재는 아니다. 산 속 깊이 자리 잡고 있으면서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는, 이름을 부르는 자체로 위로가 되고 구원이 되기도 하는 그런 존재이다. 그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는 데 든든한 백이 될 것이다. 갈매나무가 있는 백석이, 강대나무가 있는 문태준이 부러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의 백이 되어줄 나무도 어디에선가 자신을 불러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지 않겠나.(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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