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인생/ 송경동
아버지가 십 년 타고 물려준
80cc 오토바이 타고 구종점을 오른다
아버지는 이 오토바이로
오십 넘어 우유를 배달했고 백반을 배달했다
노년에 아파트 경비일을 다녔고
한때 새벽 차 다니지 않는 공사현장까지
아들아, 노가다 해서 돈 많이 벌어오라고
날 실어다 준 것도 이것이다
왔다갔다 하는 전조등
덜덜거리는 계기판
깨진 바람막이, 빌어먹을
소리만 커진 마후라통
딱 하나 성성한 거라며
브레이크 하나뿐인데
곰곰
아버지
브레이크 한 번 밟아볼 새 없이 달려온 인생이
붙어버린 엔진처럼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 『꿀잠』수록
* 자기 출신이나 계급을 벗어나서 사회적으로 성공(성공이란 개념이 모호하기는 하다. 여기선 부의 축적 정도가 높은 상류층이라 하자)하기란 쉽지 않다. 확률상 그렇다는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식으로 입지적 인물이 없기야 하겠는가마는 다수의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의 불평등한 위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일정한 반경 안에서 고만고만하게 산다. 사장의 아들은 못나도 사장이 되고, 빈민의 아들은 잘나도 가난한 노동자가 되기 십상이라는 자조가 팽배할수록 그만큼 불평등의 골이 깊다는 반증이다.
태어날 때부터의 차별이 그 이후의 환경적 요인에 의해서 더 공고화되지 않도록 무상교육 등의 사회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그 사회의 성숙도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위 시의 설정도 가난의 대물림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아버지의 인생이 자식에게 그대로 유전되는 삶이 그려진다. 아버지는 체력이 부치는 나이에도 노동에서 손을 떼지 않고 가장의 직무를 다해왔지만, 노년에 이르렀어도 여가를 위한 시간은 좀처럼 꿈꿔 볼 수 없는 처지이다. 아들도 아버지의 인생으로부터 멀리 가지 못했다. “붙어버린 엔진처럼” 두 사람은 가난이라는 이름으로 한 통속이 되었다. 개인이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구조화된 사회의 틀이 단순 노동자의 삶을 똑같이 찍어낸다. 어떻게 해볼 도리 없이 저절로 굴러서 그렇게 되니 말 그대로 ‘오토인생’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시가 송경동 시인의 다른 시처럼 사회고발적 성격을 강하게 띠거나 시대의 어두운 면을 부각시킨 것 같지는 않다. 아들을 공사장까지 태워주는 아버지,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간직한 아들, 이 둘 사이에 따뜻하게 흐르는 정이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소망한다. 브레이크가 있어 쉬어 가는 인생이, 열심히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허락되기를.(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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