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 무렵/ 도광의
산에서 울던 목청 높은 산꿩이
해질 무렵엔 무밭으로 내려와
낮은 목청으로 운다
기우는 햇살이 설핏해지면
입술 퍼런 산그늘이
주막 쪽으로 내려온다
이 시각 또한 비어 있는 마음들도
주막 쪽으로 하나둘 모여든다
- 『그리운 남풍』수록
* 밥술 뜨고 사는 게 만만한 일이 아님을 생각한다. 자본으로부터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 자기라는 상품을 광고도 하고 욕심내어 주장도 해야 한다. 더러는 흥정도 해야 하고 시비도 마다할 순만은 없다. 저물 무렵에야 시끌시끌한 하루에서 겨우 빠져나오게 된다.
산꿩도 낮에는 목청을 높여 우는가 보다. 자리싸움이나 구애를 위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런 산꿩에게 저물 무렵의 무밭은 아늑한 안식처이다. 하루의 고달픔을 위로 받으며 낮은 목청으로 운다. 자신을 알릴 필요가 없어서 그러하기도 할 것이고, 더 이상 남으로부터 방해 받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할 것이다.
저물 무렵은 자신의 표정을 억지로 감추지 않아도 좋다. 옷매무새를 정리하지 않아도 좋다. 일상에서 벗어나 조금은 느슨해지고 조금은 자유로워져도 좋다.
저물 무렵은 하루 일에서 놓여난 사람들의 귀가 시간이기도 하다. 빡빡한 업무와 관계 속에 피로가 쌓였을 테니 어딘가 부리고 가고 싶다. “날마다 오후 여섯 시마다/ 길을 잃어버리는 당신”(이외수, <퇴근>전문)같은 사람일수록 지향처가 절실하다. 비어 있는 마음을 앞세워 주막에라도 갈 일이다. 먼저 앉은 ‘비어 있는 마음’에게 술 한 잔 받고, 나중에 오는 ‘비어 있는 마음’에게 술 한 잔 건네면 삶이 한결 여유로워지지 않겠나.(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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