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의심 많은 새는 알을 품지 못한다/ 최두석

톰소여와허크 2010. 8. 30. 10:25

의심 많은 새는 알을 품지 못한다/ 최두석



점봉산 곰배령 오르는 길에

연령초꽃 함초롬히 피었기에

향내 맡으러 다가가는데

근처 덤불 속에서 부비새가 포르르

인기척에 놀라 황망히 날아갔다


새가 날아오른 자리 유심히 살피니

둥지와 품던 알이 있어

어미새에게는 미안한 노릇이지만

파르스름한 새알의 온기도 느껴보고

사진도 두어 장 찍었는데


그 둥지에서 어미새가 다시 알을 품었는지

새끼를 몇이나 길러냈는지는 모르나

나 문득 하던 일 손 놓고 싶어질 때면

파르스름한 새알을 떠올리며 되뇌인다

의심 많은 새는 알을 품지 못한다고


-『투구꽃』수록



- 부비새는 뱁새(붉은머리오목눈이)로 흔히 불린다. 뻐꾸기가 탁란 대상으로 뱁새를 주로 선택하는 걸 보면, 모성애나 육아에 일가견이 있을 법도 하다. 그런 뱁새가 둥지의 알을 지키지 못할 위기를 자초했다. 불필요한 의심이 화근이 됐다. 물론, 뱁새 입장에서는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니 굳이 탓할 일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자연스런 행위로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상황이지만 시인의 눈에 의해서 문제적 상황이 된다. 이 문제적 상황은 뱁새에게서 연유되었지만 시인 자신의 마음가짐을 다스리는 데 더 요긴하게 적용되고 있다. 지금 자신이 하는 일에서, 그리고 그 일로 인해 빚어지는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의심’이 지나쳐서 그릇되게 만든 것은 없는지, ‘의심’ 때문에 놓쳐버린 관계는 없는지 살피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를 좀 더 믿고,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좀 더 신뢰하는 쪽으로 마음 가닥을 잡아간다.

  현실적으로 접근한다면 의심 많은 새는 알을 품지 못하지만 의심을 하지 않으면 더 큰 불행이 있을 수도 있다. 이게 삶의 아이러니이다. 그럼에도 큰 믿음이 작은 의심을 포용하는 삶이 아름다울 거라고 믿는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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