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의 독백
- 서귀포에서 / 이생진
그림을 왜 그리지?
세상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
아름다움 속엔 자유가 있지
자유가 그리워서
원산에서 부산까지
아내랑 아이랑
따뜻한 남쪽나라
제주도 서귀포로
바다가 보이는군
이제 살 것 같아
바다에는 마음의 영토가 있지
저 영토에서 영원한 자유를 누릴 순 없나
여긴 총소리가 나지 않아서 좋아
여긴 미운 것들이 보이지 않아서 좋아
여긴 배고프지 않아서 좋아
바다가 보이는군
바닷속에서 그림을 그릴 순 없나
-『인사동』 수록
- 작년(2009년) 연말에 시인의 육성으로 ‘이중섭의 독백’을 듣는 행운을 누렸다. ‘자유’를 말할 때 시인과 화가의 모습이 얼핏 겹쳐 보이기도 한 것이 시를 읽는 동안 더욱 뚜렷해졌다. 그림을 왜 그리지?’에 대한 의문은 ‘시를 왜 쓰지?’라는 의문과 다르지 않다. 자유가 그리워서 바다로 간 화가나, 자유가 그리워서 섬으로 떠난 시인은 결코 남남일 수가 없다.
화가 혹은 시인이 자유를 살기 위해서 바다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보다 총소리가 싫어서이다. 총부리를 서로 겨누고 피 흘리는 사람 곁에서 화가가 제정신을 갖고 사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부를 독점하려는 자본주의의 총성이 가득한 도심에서 시인은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극한적인 상황 속에서 인간적인 관계도 깨어지기 십상일 터이었고, 더 남아서 미움을 키우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화가는 원산을 떠났고 시인은 서울을 떠났다.
화가는 고구마와 게로 겨우 연명하면서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배고프지 않다는 것은 아마 영혼의 양식이 넉넉했기 때문일 것이다.
화가는, 시인은 그렇게 꿈꾸던 자유를 만났을까?
자유는 구속과 상대적인 위치에 있으면서도 가끔 한 몸으로 섞이어 어디서부터 자유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더러 의무라는 이름으로, 더러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구속을 기꺼이 견디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아, 그럼에도 자유는 저만큼 앞에서 눈부시다. 억지로 눈 감지 않는 이상, 자유이고 싶은 마음은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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