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기(1891-1968, 전북 익산)
가람 이병기 선생은 8세 때부터 18세까지 고향에서 한문학을 수학했다. 1910년 전주공립보통학교를 거쳐, 1913년 관립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였다. 재학중인 1912년 조선어강습원에서 주시경 선생으로부터 조선어문법을 배웠다. 1913년부터 공립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이때부터 국어국문학 및 국사에 관한 문헌을 수집하는 한편, 시조를 중심으로 시가문학을 연구·창작하였다.
가람은 낡은 중절모와 유행에 뒤떨어진 옷차림, 일년내내 바뀌지 않는 구두, 수선한 흔적이 남은 낡은 가방을 아무 거리낌 없이 들고 다녔던 소탈 담백한 선비였다. 가람의 좌우명은‘후회를 하지말고 실행을 하자’는 것이었으며, 78세 생애에 언제나 떳떳하여 흠결을 남기지 않은 것도 이 좌우명을 실행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일제 식민지시대에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루면서도 끝내 '창씨개명'에도 응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임종국의 《친일문학론》에 의하면 가람은‘일제시대에 쓴 시와 수필의 어느 한 편에서도 친일문장을 남기지 않은 영광된 얼굴'이라고 하였다.
8. 15 광복 후 서울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을 두루 다니며 후학 양성에 노력하였는데 그의 담백하고 호탕한 성격과 애주(愛酒), 풍부한 고전의 해학과 음담패설로 수많은 일화를 남겼다.
그의 제자인 정병욱 교수의 평에 따르면 "술로는 두주를 사양치 않았고, 난을 사랑하기로는 그를 데리고 기거를 같이 할 정도"였으며, "책을 좋아하기로는 엄두도 못 낼 값비싼 희귀본을 빚지면서까지 사들이는 학자다운 욕심도 아울러 가진" 사람이었다.
가람의 제자이며 중앙대에서 같이 강의를 맡기도 했던 남광우 교수는, "선생이 계시는 곳에는 언제나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풍부한 고담(古談)과 기담(奇談), 외설적인 이야기로 강의실엔 웃음이 떠날 때가 없었는데, 그래도 어찌 그리 자연스러웠는지요. 그것이 그분 인품의 소치였나 봅니다. 술을 좋아하셔서 술을 권하면 사양하는 법이 없었고 술로 인한 탈선이 없었습니다. 술을 드셔야만 웃음꽃이 피는, 그야말로 술은 그분에게 없어서는 안될 윤활유와 같은 것이었죠"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윤영천 교수는, "선생의 생활은 윤택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대학원 재학시 계동에 있는 자택에 들리곤 했었는데 평범한 한옥에 서민적인 생활을 하셨지요. 선생을 서지학(書誌學)의 대가라고 하지만 책 한 권을 얻기 위해 몇 달치의 월급을 털곤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소중하게 아끼셨던 고서들을 모두 기증하셨던 거지요. 돈으로는 환산할 수가 없는 책들입니다. 선생은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대인적(大人的) 품위를 지키신 분이라 생각합니다"라고 회상했다.
가람은 17세부터 뇌일혈로 쓰러지는 78세까지 일기를 꼬박꼬박 써왔다. 마지막 날의 일기는 다음과 같다.
[1966.2.28. 대변을 보았다. 인척이 와 모이다. 술밥을 먹다. 내 생일이다. 하오 5시 종용이가 오다. 술을 먹다. 종일 맑다.]
손주 며느리의 말에 의하면 일기를 쓴 후, 술을 가져오라고 해서 가져다 주고 난 뒤 이상한 소리가 나서 가 보았더니, 잔에 술을 따라 놓은 채로 쓰러져 있었다고 한다.
가람이 타계할 때까지 옆에서 모셨던 셋째며느리 윤옥병씨는 "아버님은 평소에 말씀이 적으셨고 늘 책을 가까이 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방문을 좋아하셨고 제자들이 올 때면 항상 술상을 보아야 했지요. 꽃이 피면 제자, 친구들을 초대하여 술 드시는 걸 즐겼습니다"라고 당시를 회상한다.
가람 스스로 제자복, 술복, 화초복을 타고났다고 했을 정도로 그의 곁에는 항상 제자와 술과 화초가 떠나지 않았다. 그의 서재에는 고서 사이에 유자와 먹의 향기가 그윽했고 언제나 난초가 있어 찾아간 후학들에게 조선조 선비의 모습을 연상케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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