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작성 시각 : 2002.02.17 22:37:56
파질 이스깐데르,<내 마음의 간이역>,들녁미디어,2002.
책을 사두고 좀처럼 읽지 못하다가, 친구 결혼식이 있는 청주를 오가며 고속버스 안에서 다 읽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버스나 기차에서 또는 낯선 여관에서 읽은 책이 꽤 되는 것 같다. 책 읽는 것 자체가 여행인데, 굳이 집을 떠나야만 잘 읽히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 책은 몇 개의 삽화로 구성된 '나'의 이야기이자, '나'가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의 우상'에서 '나'는 위험한 고공 가로대를 뛰어다니던 친구 유라를 흠모해서 남모르게 가로대를 건너는 연습을 한다. 두려움을 극복하며 조금씩 나아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지만, 유라에 비할 바가 아니다. 둘은 성장하면서 공통의 목적이 없어질 무렵 우정에 종말을 고하고 헤어진다. 필자는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말한다.
성인이 되어 만난 유라는 뜻밖의 고백을 한다. "난 가로대 위를 뛰어다닐 수밖에 없었어. 너무나 겁이나 천천히 걸을 수 없었던 거야."라고.
두 번째 삽화는 '나'와 '나'에 대한 적대감을 갖고 있는 수탉 사이에 난투극이 벌어지는 내용이다. 누구든 남으로부터 침범 받고 싶지 않는 자기 영역이 있고, 그곳에서 갖는 얼마간의 권위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수탉 입장에서 볼 때, '나'가 바로 그 영역과 권위에 도전하는 존재였다. 이후 수탉과 '나' 사이에 벌어진 만만치 않은 전투는 사촌형의 괭이 한 방으로 싱겁게 끝난다. 수탉은 훌륭한 저녁 식사거리가 되고 말았다.
이 밖에 돈을 쉽게 빌리고 잘 갚지 않는 사람, 나치 치하에서 양심과 우정을 지키려 애쓰면서도 친구를 의심했던 어떤 독일인 이야기 등이 나온다. 사실, 뒤 이야기는 조금 지루한 감도 있었다.
작가의 말을 빌리면, 이 책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쉽게 흘려버리곤 했던 사람의 특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남과 구별되는 자기만의 고유한 특성이 있다. 그 고유한 특성을 이해하고, 평범하고도 건강한 삶의 모습을 찾는 게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일 것이다.
남과 달라지려고 애쓰는 것보다 남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이, 결국 자기를 달라지게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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