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작성 시각 : 2002.03.28 11:09:44
황사가 꽃샘 추위를 대신하더니, 이제 벚꽃이 봄날을 하늘거리고 있다.
<봄날은 간다>에서 상우와 은수가 아주 헤어지는 날이 지금 같은 날이지 싶다. 벚꽃 길을 사뿐싸뿐 걸어서 멀어져 가는 은수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세 번쯤 돌아봤을까. 그 때 상우는 몹시 흔들리며 그만 손을 서서히 든다. 그렇면 그렇지. 은수는 기대와 초조가 어울어진 눈빛으로 물어온다. 다시 봄날로 돌아가자고.
상우는 은수의 뒤를 하염없이 쫓으면서도 표정이 없다. 무심한 표정엔 깊고깊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일순간 눈이 뜨거워지고 흐려진다. 자기도 모르게 손을 든다. 마치 은수를 부르는 듯이. 또 다시 벚꽃 피듯 나른한 봄날의 사랑에 취하고, 벚꽃 지듯 찢어지는 아픔을 견디는 그날로 돌아가, 또 다시 봄날을 살아. 상우는 몸을 떤다. 상우는 이별을 고하는 마지막 손인사를 어렵게 연출한다. 은수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또박또박 걸어간다. 상우는 힘없이 손을 떨군다.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는 변치 않는 사랑을 믿는 상우라는 남자와 자기 감정에 솔직할 뿐 얽매임 없는 사랑을 원하는 은수라는 여자가 만나고 헤어지는 이야기이다. 사랑을 말하고, 곧 이별을 말하는 은수의 정직함이 상우를 혼란스럽게 하는 날이 이어지고, 끝내 상우는 나와 같지 않은 은수의 존재를 인정해야만 했다. '떠나는 버스와 여자는 잡는 게 아니다'라는 할매의 중얼거림과 몇 번의 이별을 통해 사랑은 구속이 아님을 상우는 깨우친다.
봄날이 아무리 좋아도 마냥 잡아둘 일은 아니다. 보내야 할 것은 보내야 하고, 깨어질 것은 깨어져야 한다. 사랑도 그러할 것이다. 상처와 부대낌 속에 더 온전한 것들이 자라지 않을까. 봄날을 보내야만 봄날이 온다. 봄날에 대한 미련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