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영화)

죽어도 좋아

톰소여와허크 2010. 8. 31. 10:54

글 작성 시각 : 2002.12.08 22:11:16

노년의 성을 외설적으로 까발린 영화라는 입소문 때문에 호기심을 갖고 봤다. 일흔 넘은 할아버지가 공원에서 비슷한 나이의 할머니에게 예쁘다고, 참 예쁘다고 했다. 할머니는 두 보따리의 짐을 챙겨 할아버지의 집에 들어왔다.
두 노인은 틈만 나면 서로를 탐했다. 만지고 보듬고 씻겨주고 안아주었다. 젊은 신혼부부의 애정 놀음을 보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창을 가르치고,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글자를 가르쳤다. 어쩌다 외출한 할머니가 늦도록 돌아오지 않자 할아버지는 걱정과 질투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할머니가 아파할 때 할아버지가 손수 닭을 잡아 할머니에게 떠먹여주기도 했다. 임자 걱정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면서.
특별한 사건이나 갈등 없이 한 시간 가량의 영화는 끝났다. 다소 싱거운 느낌이다. 노년의 성이 아름답게 그려진 영화라는 평에 동의하기가 어렵다. 낯뜨거운 장면으로 노년의 성을 왜곡시킨 영화라는 평에는 더더욱이나 동의하기가 어렵다. 너무나 일상적인, 그래서 단조롭기까지 한 삶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일상적인 것을 색안경을 끼고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면 그것이 왜곡된 시선일 것이다.
노인이 되면 근력이 떨어지는 건 자연적인 현상이다. 힘이 빠지니 일을 욕심내어 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늙는다고 사람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기욕망을 만들어내고, 그 욕망을 채우려는 몸짓이 아닌가. 젊다고 해서 욕망이 들끓고 늙었다고 해서 욕망이 사그라드는 건 아니다. 젊은이의 욕망이 특별히 아름다운 것이 아니듯이 노인의 욕망이 특별히 추한 것도 아니다.
인간관계나 애정의 문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랑하고픈 사람을 마음껏 사랑해주는 일이 젊은이의 특권이 아니라 인간 모두의 권리임을 두노인은 한몸이 되어서 말해주고 있다.
노인이 아무런 걱정(돈 걱정, 집 걱정, 자식 걱정) 없이 사랑을 나누는 사회를 나는 희망한다. 나도 늙어갈테니까. 끝이 좋아야 다 좋다고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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