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작성 시각 : 2003.08.21 00:07:43
김제철, 초록빛 청춘, 고요아침, 2003.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문열作)에 나오는 열 두 살 주인공 병태는 부당한 권력과 독재에 저항한 아이였다. 일년 여의 투쟁 끝에 결국 항복을 하고 말았지만, 그 과정의 치열함과 포기하지 않는 정신은 그 또래의 아이들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초록빛 청춘>의 윤규는 병태와 꽤 닮았다. 비교적 부유한 집안에서 부모의 보살핌 속에 성장한 열 두 살 아이란 점이 그렇고, 5학년 때 전학을 오면서 문제상황에 부딪히게 된다는 점도 똑 같다. 자의식이 강하고 생각이 깊다는 점도 동일하다. 다만, 병태가 학급에서 고립되어 아주 심각하고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했다면, 윤규는 첨예한 대립 없이 순조롭게 학교생활을 했다는 점이 다르다. 그래서 윤규의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싱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병태에게는 엄석대라는 절대 강자가 있었지만, 윤규가 맞섰던 담임은 그런 존재가 못 되었던 탓이다.
담임은 집요하면서도 쩨쩨한 선생이었다. 외부의 청탁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빼앗긴 1반 담임 자리를 기어이 돌려받은 것은 부당한 인사에 대항한 정당한 행동이라고 좋게 해석할 수도 있겠다. 이후의 행동이 문제였다.
담임은 부잣집 아들을 부반장으로 임명하고, 나중에는 성적 조작을 통해서 그 학생이 우수상을 받게 했다. 반장 아이는 자신에게 피해가 없으니 그냥 넘어가자고 했다. 윤규는 그런 반장을 설득해서 담임에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윤규가 아름다운 것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한다. 저항의 당위성에 비해서 윤규의 생각과 행동은 실망스러운 데가 있다. 담임에 대한 불만과 문제제기 그리고 시정을 요구하는 연판장을 작성했는데, 공부 잘하는 아이 몇 명의 서명만으로도 반의 대표성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점이 그 하나이다. 또 하나는 요구 조건이다. 지금의 담임이 육학년 담임을 맡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라는 것이었는데, 이 또한 이기적인 태도라고 여겨진다. 어찌 보면 그 나이 또래의 당연한 한계인지도 모르겠다.
처음 혁명을 꿈꾸었을 때 내 나이 열 두 살이었다고 작가는 말하고 싶어한다. 언젠가 제대로 된 혁명을 하고 싶다고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물었던 김수영의 시가 생각난다. 혁명을 꿈꿀 수 있는 나이, 가슴에 더운피가 흐르는 시절이 바로 '초록빛 청춘'일 게다. 내 나이 열 두 살, 생각해보면, 심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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