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톰소여와허크 2010. 8. 31. 11:20

글 작성 시각 : 2003.09.21 23:11:27

박민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한겨레신문사, 2003.

이승엽이 홈런을 쳐서 아시아 신기록을 세울 수 있을까. 연일 스포츠 뉴스의 초점이 프로야구에 쏠려 있다. 2003년 프로야구는 늘 그러하듯이 삼성, 현대 등 돈 많은 팀이 우승을 다투고 있다.
삼미는 프로야구 원년, 지금으로부터 이십 여 년 전에 존재했던 야구팀이다. 삼미는 숱한 기록을 남기고 전설 속으로 사라졌다. 삼미의 전설적인 기록은 소설에 온전히 옮겨져 있다. 열 번 붙어서 세 번을 이기지 못하는 팀. 그래서 삼미 슈퍼스타즈 어린이 팬클럽에게 쪽팔림을 주고, 꿈 대신 절망을 안겨주고, 이후 그 아이들이 성장하는 데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던 팀이었다.
그런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조금씩 삼미 야구의 참맛을 깨우친다는, 조금은 황당한 이야기이다. 주인공이 생각하기에, 삼미는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 야구'를 통해서 야구 뒤에 숨어있는 자본주의 논리를 거부했던 유일한 팀이었다. 기타 다른 팀들은 일등을 향해서, 혹은 살아남기 위해서 머리 터지고, 피 터지도록 치고 달리고, 야간에도 치고 달리고, 주말에도 치고 달렸다. 오직 삼미만이 그런 자본주의의 함정과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
주인공은 삼미 야구의 이런 정신을 잠시 망각하고, 몇 년간 회사에서 종일 일하고, 미친 듯이 일하고, 그래서 이혼하고, 마침내 회사에서 정리되는 비운을 맛보았다. 주인공은 뒤늦게 삼미 야구의 위대함을 추억하고 새 삶의 용기를 찾는다는 게 소설의 결말이다.
삼성 야구를 통해 꿈을 키우고 또한 상처를 입었던 나는 삼미 야구의 위대함을 추호도 부정하고 싶지 않다. 삼성 야구에 길들여진 나는, 치기 힘든 공을 치려고 했고, 잡기 힘든 공을 잡으려고 했다. 또 그런 삶이 가치 있다고 배웠고, 배운 것을 가르치고 있다. 나는 자본주의에 젖어 있는 나를 반성한다. 하지만 삼미 야구는 끝났고, 삼성 야구는 진행형이다. 이게 딜레마이다.
주인공이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었다면 나는 그저 야구광일 뿐이다. 한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