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작성 시각 : 2003.10.02 17:00:10
전혀 다른 성격의 영화를 한 주 간격으로 보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먼저 보았고, '내츄럴 시티'를 나중에 보았다. 둘은 꽤 다르지만 닮은 점도 있다.
'봄-'은 사계절의 흐름 속에 인간이 태어나고, 욕망을 갖고, 그로 인한 부대낌과 고통을 맛보고, 마침내 제자리로 돌아오고자 하는 인생 순환의 과정을 압축하여 표현했다. 중의 신분으로 여자를 사랑하게 되고, 그 여자를 놓칠 수 없기에 절을 떠났던 주인공은 여자의 배신으로 분노와 절망에 사로잡혔다. 사람을 죽이고도 분노를 억제하지 못했던 그는 절로 돌아와서 마룻바닥에 밤새 글씨를 새기면서 비로소 무거운 짐을 벗어놓게 된다.
'내츄럴 시티'에 나오는 특수경찰 요원 R은 춤추는 사이보그 여자를 사랑한다. 사이보그 여자는 수명이 다 돼가고, R은 포기할 수 없는 사랑 때문에 고통스럽다. 홀로그램 안에서 두 연인은 현실을 잊으려 하지만, 가상현실은 현실이 될 수 없다. 결국, R은 사이보그 여자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 다른 여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도 서슴지 않게 된다.
'봄-'에 나오는 중이나 '내츄럴 시티'에 나오는 R은 한 목소리로 '나는 사랑한 죄밖에 없다'고 절규한다. 사랑이 불이라면 두 사람은 불에 덴 아픔을, 뼛속까지 파고든 아픔을 호소한다. 불이 끝나면 재가 되고, 흙이 되고, 공기가 되듯이 두 사람도 다른 모습으로 변해간다. 중은 한때 사납게 타오르던 욕망의 끝에서 깨달음을 얻어 정진 수행하는 구도자가 되었고, R은 여자의 곁을 떠나서 특수 경찰로서 범죄자를 응징하다가 숨졌다.
호수 가운데 떠 있는 고요한 절에서도 사랑과 고뇌가 싹트고, 우주선이 나는 미래 도시나 폐허의 구렁에서도 사랑과 고뇌와 죽음이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사랑을 시작해서 고통스럽고, 사랑이 떠나서 더욱 고통스럽고, 사랑 때문에 망가지고 또 행복하다. 인간으로서 어찌할 수 없는 사랑이고 고통이라면, 그 극한을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벼운 사랑이 많은 요즘에 '내츄럴 시티'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