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하는 일이 재미없다는 것은 설거지를 해 보지 않았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생각이다. 일단 싱크대 앞에 서서 소매를 걷어올리고 따뜻한 물 속에 손을 넣으면 설거지하는 일이 정말로 재미있어진다. 각각의 접시와 설거지물과 그 물 속에서의 내 손동작을 <알아차림>으로 느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빨리 후식을 먹으려고 서두른다면 설거지하는 일이 자연 짜증스럽고 시간만 낭비되는 것이다. 매 순간 순간의 삶이 하나의 기적인데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접시 자체와 내가 그 접시들을 닦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기적인 것이다.
만일 내가 설거지를 빨리 끝내고 가서 후식 먹을 생각만 한다면 당연히 설거지는 유쾌한 일이 될 수 없고, 마찬가지로 후식을 먹는 일도 즐겁지 못하게 된다. 손에 포크를 든 채 다음에 할 일을 생각하느라고 그 맛과 느낌을 음미하며 먹는 후식의 즐거움도 잃어버리게 된다. 그것은 미래에 항상 끌려 다니면서 현재마저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일이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 하나하나는 <알아차림>의 햇살 속에서 비로소 본래의 참 의미를 찾게 되는 것이다. 이 햇살 안에서는 성스럽다거나 세속적이라는 구별이 없다. 내가 설거지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그 시간을 완전하게 즐기기 때문에 행복하다. 설거지하는 일은 수단인 동시에 목적이다. 다시 말하면, 접시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 설거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매 순간을 충만하게 살기 위해 설거지하는 일 자체가 설거지하는 일이다.
'나누고 싶은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450년만의 외출 (0) | 2010.09.01 |
---|---|
생태적 도시인이 되는 10가지 약속/ 박경화 (0) | 2010.09.01 |
차별과 차이는 다르다/ 김용택(교사) (0) | 2010.09.01 |
이라크로 떠나며/ 박노해 (0) | 2010.09.01 |
2003년, 대구 지하철 이야기 (0) | 2010.0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