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 문인 일화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812-1870, 영국 포츠머스)

톰소여와허크 2010. 9. 4. 18:47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812-1870, 영국 포츠머스)

 

 소설이 발생한 이래 디킨즈만큼 대중적 인기를 누린 작가는 흔치않다. 그가 살던 영국에서는 위로는 여왕부터 아래로는 하층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디킨즈의 열렬한 독자였으며 매달 그의 작품이 출판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한다. 하우저는 '그는 단순히 위대하기도하고 대중적이기도 하다든가 또는 대중적임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것이 아니라, 바로 대중적이기 때문에 위대한 극소수의 예술가에 속한다'고 했다

 찰스 디킨스 고향은 영국 남부의 군사기지 겸 항구도시인 포츠머스였는데, 해군 관리국의 하급 관리였던 아버지는 호인이기는 했지만 금전개념이 희박해 남의 빚 보증으로 감옥생활까지 했다. 덕분에 디킨스는 유년시절 학교조차 다닐 수 없던 빈곤함 속에서 12살부터 공장 노동자로 일해야만 했다. 자본주의의 발흥기였던 19세기 영국, 산업혁명이 가져다준 번영의 이면에는 도시빈민들의 절대적 빈곤과 미성년자들의 비인도적인 노동 등 수많은 모순이 동시에 존재했고, 디킨스는 어려웠던 소년시절을 통해 이 같은 사회의 부조리를 직접 몸으로 체험한 셈이다.

 이 시절 디킨스는 런던의 뒷골목에서 구두를 닦기도 했었다. 새벽부터 나와서 밤늦게까지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구두를 닦으면서도 디킨스는 얼굴에 밝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늘 밝은 노래를 부르니 그에서 사람들이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구두 닦는 일이 뭐가 그리 좋니?" 그때마다 디킨스는 대답했다. "즐겁지요. 저는 지금 구두를 닦고 있는 게 아니라 희망을 닦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어린 찰스 디킨스가 손님들의 반짝거리는 구두 코 위에서 희망의 별빛을 보았던 것이었다.

 이처럼 어려웠던 주변 환경에도 불구하고 공장 노동자, 변호실 사무소 사환 등으로 일하면서 독학을 통해 신문기자로 성장했다. 그러다가 1836년 여러 단품과 소품을 모아 만든 이야기 '보즈의 스케치집'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문단에 등장한다.

 '올리버 트위스트'는 디킨스가 26살이었던 1838년 발표된 작품으로 당대에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 작품이다. 이 작품엔 전술한 영국사회의 모순적 단면이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산업혁명을 전후로 빈부의 격차가 심해졌지만,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사회보장제도가 미숙했던 19세기 런던의 풍경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버지도 모르는 채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도 죽어 고아원에서 자라게 된 고아 올리버는 꿀꿀이 죽도 제대로 못먹는 가혹한 생활에 견디다 못해 런던으로 도망치나, 아이들을 앞잡이로 삼아 소매치기를 시키는 페이긴의 소굴로 들어가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꿋꿋하게 살아가는 올리버를 친절한 부자가 구해주어 행복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그의 작품세계는 현실 사회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켜 영국 내에서 연소자 학대나 재판의 비능률이 개선될 정도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뮤지컬 '올리버!(Oliver!)'는 바로 디킨즈의 원작소설 '올리버 트위스트'를 각색해 만든 작품이다. 무대를 통해 처음 선보인 것은 1963년 6월 30일로, 영국인 작곡가 라이오넬 바트(Lionel Bart)가 런던의 뉴런던 극장에서 처음 막을 올렸다. 공연 결과는 엄청난 성공이었다. '올리버!'의 초연 무대는 6년여의 세월동안 자그마치 2,618회의 연속 공연이라는 흥행기록을 세운다. 80년대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캣츠(Cats)'가 등장하기 전까지 이 작품은 뮤지컬 공연으로 가장 긴 흥행실적을 기록한 작품이었다. 런던 공연의 성공적인 흥행은 브로드웨이로도 이어졌다. '올리버!'의 브로드웨이 공연은 런던 공연이 있은 지 3년 뒤인 1966년 임페리얼 극장에서 시작돼 2년여 동안 총 774회의 공연기록을 수립하며 인기를 모았다.

 연이은 뮤지컬 공연의 흥행은 은막으로도 이어졌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캐롤 리드 감독의 1968년작 뮤지컬 영화 '올리버!'는 초연 무대와 브로드웨이에서의 성공으로 말미암아 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시작된 해에 '올리버!'는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 등 6개 부문을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리바이벌 공연을 통한 '올리버'의 인기는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디킨스는 1843년 12월19일, 66페이지짜리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을 출간했다.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한 5편의 시리즈 중 첫 번째 작품이다. “가진자의 타락상을 고발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 그들의 마음을 열도록 하겠다”는 구상을 10월에 하고, 6주만인 11월 중순경에 완성해 이날 출간될 만큼 속전속결로 씌어졌지만 이듬해 런던에서 5번 이상이나 무대에 올려질 만큼 반응이 좋았다. 스크루지라는 새로운 캐릭터가 독자들에게 어필한 것이다. 자린고비, 수전노의 대명사로 불리는 스크루지가 마음을 고쳐먹고 새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은 결국 없는자에게는 희망을, 가진자에게는 반성의 메시지를 제시했다.

 이후 잡지사 경영, 연극 상연, 여행, 자기 작품의 공개 낭독 등 바쁘게 활동을 계속하였다.  쉴 사이 없는 활동으로 그의 건강상태는 나빠졌지만 쉬려고 하지 않았다. 더욱이 1858년에는 20년 이상 함께 살아 왔고 10명의 아이를 낳은 부인 캐서린과 별거하는 등 정신적인 고통이 겪기도 했다.  자전적 요소가 강한 "데이비드 코퍼필드" ,  "위대한 유산"은 이 시기에 쓴 걸작이다. 영화로도 여러 번 제작되었던 찰스 디킨스의 장편소설 《위대한 유산》을 잠깐 들여다보자.

 가난한 고아 소년이 익명의 부호로부터 거대한 돈을 받은 이후 예전의 근면함이란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속물로 변해간다. 그러던 중 자신을 후원해준 은인이, 다름 아닌 어린 시절 자신이 먹을 것을 보태주었던 탈옥수임을 알게 된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탈옥수인 자신을 믿고 도와주었던 단 한 사람, 고아 소년을 위해 자신의 모든 재산을 내주었던 그의 마음을 알게 된 주인공은 문득 욕망의 허망함을 깨닫는다. 19세기 영국 사회에 만연했던 금전만능주의를 비판한 이 소설은 진정 위대한 유산이란 ‘아낌없이 주는 사랑’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 시기도 디킨스는 빈민에 대한 동정에 입각한 정의관을 가지고 강렬한 영상으로 인간 사회를 여실히 묘사했다. 1870년 6월 추리소설 풍의 "에드윈 드루드의 수수께끼" 를 미완성으로 남긴 채 생을 마감한 디킨스는 영국의 국립묘지 격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치되었다.

 "제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지나가 버린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다." 찰스 디킨스가 남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