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할매 산소

톰소여와허크 2010. 9. 11. 12:12

 

 

 

 

할매 산소 / 이동훈

 

 

빈 상여와 함께 보공으로 쓰인 남루가

단불에 너풀너풀대던 그날

천지사방 튀는 불꽃 속에 언뜻번뜻 비치는,

이쪽을 반히 보고도 아무 말 내지 못하던 할매.

孺人 月城 金氏之墓로 남아

어느 봄엔 할미꽃으로

어느 가을엔 도라지꽃으로 안녕했지.

웃을 듯 말 듯한 생전의 입매가 꽃 속에 있었지.

그러다 비석 뒤에 새긴 자식 이름

하나 둘 지워지면서

누름누름해져 말문을 닫은 할매.

오늘처럼, 생사 모르는 철없는 아이들

빗돌 한 쪽씩 잡고 뭐라고 종알거릴 것 같으면

바람 든 어깨 시원하시려나.

굳은 입매 풀리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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