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갈대

톰소여와허크 2010. 9. 21. 23:26

 

 

 

갈대/ 이동훈


너거 아부지, 참 못났다.

잡일꾼만 삼사십 년이니

안 해 본 일도 없는데

변변하게 내세울 명함은커녕

밥이 되는 기능 하나 익히지 못했구나.

남들처럼 옹글게 물고 늘어지는 구석도 없고

꾀부리거나 탓할 줄도 모르더니

그냥 삽질하고 층층이 질통 지며

예까지 왔구나.

더러는 속없이

허튼소리라도 비위 맞추면 좋을 것을

혼자 서걱대며 지나온 게 반평생이구나.

답답한 노릇이긴 해도 어찌하나,

천성이 그런 것을.

너거 아부지, 참 불쌍하니라.

모래 시멘트 뒤집어쓰는 막일에

쭈뼛쭈뼛 허옇게 굳은 머리털을 보자면

저물녘에 강바람 맞고 선 갈데없는 갈대란다.

이제는 지나는 바람에도

보풀 한 올 일지 않는 갈 때까지 간 갈대인데

참말로 너거가 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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