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꽃/ 이동훈
꽃을 피우지 않는 식물은 없다고 그러셨죠.
질경이 돋아나던 돌밭 어디쯤이었을까요.
뚱딴지 무더기 피던 길모퉁이 어디였던가요.
고추 심고 감자 심던 밭두둑 어디였던가요.
생명 있는 것은 모두 꽃이라는 말씀이
갓 캐낸 감자알처럼 환하게 켜지더군요.
잘 계신가요.
씨알 여무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고 하시더니.
못난 놈 잘난 놈 차별 없이 건사하면서
아이들 곁에서 꽃 피우는 재미로 살겠다고 하시더니.
당신이 떠난 자리엔 질경이가 시퍼래요.
너무 흔해서 있는 줄도 몰랐던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도 꽃대를 바로 올리는
구둣발에 되우 밟히고 벌레에 숭숭 뚫렸어도
지천으로 살아오는 생명을 당신인 듯 봅니다.
땅속 어둠에서 주렁주렁 달려 나온 뚱딴지를 두고
빛보다 환한 어둠이라는
당신의 뚱딴지같은 소리를 곧이들었을까요.
고구마처럼 꽃을 간직했으나
영영 피지 못할 것이라고 믿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당신의 말을 흉내 내어 봅니다.
꽃을 피우지 않는 식물은 없다고
고구마 자체가 이미 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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