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장사지 삼층석탑/ 이동훈
남산 용장(茸長)골 가는 길에 일행끼리 지명에 쓰인 용(茸)자의 쓰임에 대해 궁리했다. 자전의 해석은 귀(耳)에 잔털(艹) 처럼 수목이 무성한 모습이라는 것인데 그땐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다. 사슴뿔처럼 뻗친 계곡의 모양새에서 용(茸)자가 생겨났을 거라는 말도 나중에 들었다. 이런 지식이 미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더 생생한 깨달음은 따로 있었다. 봉우리에서 한 발 내려설 때였다. 궁둥이를 살짝 까놓은 듯한 언덕바지, 그 끝에 외따로 선 석탑과 처음이면서도 오래 알고 지낸 것처럼 자연스레 마주했다. 석탑이 있는 곳은 하늘과 맞닿은 땅의 배꼽 자리 같기도 하고, 부챗살 모양의 안쪽 중심 같기도 한데 용(茸)자의 비밀은 거기에 있었다.
우주와 교신하려고 안테나(艹) 를 맞추는.
잠투정으로 칭얼대던 아이를 겨우 물리고 인화된 석탑을 몇 번이나 보고 본다. 지금쯤 용장골 꼭대기엔 안테나 서고, 발부리 들썩들썩하여 우주와의 소통이 한창이겠다. 내 귀와 더듬이도 뒤늦게 아이를 잡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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