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에 대한 명상>수록작

쑥 뽑히다

톰소여와허크 2010. 9. 15. 16:58

 쑥 뽑히다/ 이동훈


꽃밭에 쑥 같은

볼품사납고 불량스럽게만 기억되는

그래서 후회되는 이름이 있다.


쑥에게 손을 댔다.

뿌리의 흙알갱이까지 모질게 털어 덤불에 던지고

가을볕에 바짝 말랐을 줄만 알았다.

그랬던 것이 두어 뿌리 용케 살아남아 꽃을 피웠는데

아뿔싸! 내가 버린 건 색색이 아름다운 국화였다.

국화 잎줄기를 쑥대로만 여기고 일을 저질렀으니

괄시 당한 쑥에게 미안하고

쑥 대신에 초상난 국화에게 미안하다.

다른 것을 그르다고 하고

있는 그대로조차도 볼 줄을 몰랐던 셈이다. 

국화도 쑥도 자기를 몰라보는 손길이 오죽 미웠을까.

마음을 기울여 보면 서로 다르다 할 것을.

또 마음을 기울여 보면 서로 다르지 않다 할 것을.

이제 어쩔 거나.

쑥 대신에

국화 대신에

쑥 뽑힌 자존심 한 움큼을.

 

 * 쑥은 정말 쑥 뽑히지 않는다. 얼마 전 집 마당 잔디 틈 사이와 밭갈이 한 텃밭에도 벌써 삐죽삐죽 쑥대들이 돋아나 몇 시간을 웅크리고 뽑았다. 잔디는 아직도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않아 누런빛인데, 부지런한 쑥은 벌써 제자리를 만들며 쑥쑥 자라날 차비였다. 쑥잎은 첫 순이라 저녁 쑥국을 끓여먹을 요량으로 바구니도 채우며 뽑는데 어린 쑥이지만 쑥 뿌리는 여전히 질기고 무성해 일일이 호미질을 해야 했다.

  유난히 흙 알갱이를 많이 품고 있는 풀, 풀이라 하기엔 아까운 여러모로 우리와 친근한 식물, 향기도 좋고 영양도 좋아 내심 좋아하지만 꽃밭이나 채마밭에는 어쩔 수 없는 불청객 친구이기도 하다.

  시인도 국화 밭에 볼품사나운 쑥을 뽑아 버리려다 그만 국화를 뽑아버린 실수를 범했는데 사실 쑥잎과 국화잎이 비슷해 구별이 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네 인생살이가 어디 이런 과오뿐이겠는가. 중요하지 않아 무심하게 내버린 그래서 후회 막심한 오판들이 어찌 한두 번이겠는가. 그래서 시인은 쑥에게 국화에게 미안해하며 고백한다. 있는 그대로 못 보는 눈길을, 손길을, 그리고 기실 마음 기울여 들여다보면 다르다 다르지 않다의 차이가 어디 있겠느냐는 통찰 속에 쑥 뽑힌 자존심 한 움큼을 내보인다.

  자, 이 꽃 피는 봄날 나도 나와 다르다 외면하고 싶었던 당신께 꽃소식 물으며 안부전화라도 한 통 걸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송영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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