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에 대한 명상>수록작

아이티 소녀의 눈물

톰소여와허크 2010. 9. 20. 14:00

아이티 소녀의 눈물/ 이동훈


 

  먼 나라 아이티, 건물 더미에 한쪽 다리를 묻고 목숨을 건진 소녀의 눈물이 아주 가까이 떨어진다. 그날 밤, 엄지발가락이 욱신대고 열이 나더니 통풍(痛風)이란다.


  바깥으로 빠져나가야 할 게 안으로 쌓여 염증이 생긴 것이다. 안팎으로 통(通)하지 못한 잘못을 따끔하게 찔린 통(痛)이다. 값싼 동정의 눈물만 보탤 것이 아니라 몸 안에 기름기부터 없애라는 신호였다.


  노간주나무 열매가 통풍에 잘 듣는다는 말만 믿고 눈밭을 헤매 다녔다. 만나자마자 노간주나무의 몸통을 아래로 바짝 휘게 해서 한쪽 발로 누르고 열매를 땄다. 파랗게 여문 햇것도 검게 익은 묵은 것도 가리지 않고 마구 그러담다가 가시에 찔리고야 나무를 놓아주었다.


  접힌 허리가 다 펴지지 않아 반쯤 올라가고 반쯤 누운 나무가 그제야 눈에 뜨인다. 평생 불임과 요통으로 고생할 노간주나무를 슬퍼하듯 곡소리를 내는 바람이 사무친다. 미안하다, 내 한 몸 위한답시고 이렇게 주위를 아프게 하다니.


  먼 나라 아이티, 구호물자를 지키기 위해 발포했다는 뉴스를 들으며 발가락을 꼬무락꼬무락 움직여 본다. 통증은 통(通)하려는 마음을 부르는지 동상에 걸린 노간주나무의 부러진 가지가, 없는 다리를 긁을 소녀의 눈망울이 그렁그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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