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가을을 태우는 여자

톰소여와허크 2010. 9. 27. 22:54

가을을 태우는 여자/ 이동훈

청도에서 나오는 길이었네.
포도밭을 지나면 포도 파는 행상을
복숭아밭을 지나면 복숭아 파는 행상을
드문드문 흥정하는 손님이 있었네.
누가 잡아끄는 것처럼 보게 된
맨다리 드러내고 팔랑거리는 치마 입은
가을하늘보다 눈부신 여자.
물오른 복숭아보다 때갈 좋은 그 여자.
헛배 부르는 눈요기도 겸연쩍어
구름 서너 점 걸쳐놓고 짐짓 늘어진 산마루
그 넘어 경산으로 접어드는 길이었네.
중앙선 넘어 앞지르기 하는
상큼하기 이를 데 없는 그 여자.
꽁무니에 대어 가는 것도 미안한 일인데
차창 내리고 손을 내미는 여자.
바람마저 유혹하려는 그 여자.
달뜬 바람도, 숨도, 바퀴도 멈춰진 순간이었네.
손가락 끝에서 톡 떨어져 구르는
그 여자의
...담...배...꽁...초...
가을은 그렇게 타들어갔네.

 

- 우리시 2010년 9월호

'자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채  (0) 2010.10.22
스파티필룸  (0) 2010.10.20
민들레의 푸념  (0) 2010.09.26
'인사동 가는 길' 외 4편(2009년『우리詩문학상』신인상 당선작)  (0) 2010.09.26
아버지의 자전거  (0) 2010.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