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읍에서 직할시로 이사하면서 고무신 대신 운동화를 사게 되었어. 치수만큼은 여전히 할매 권리여서 눈썰미 빤한 할매는 콩잎처럼 자랄 아이의 발을 상상하여 265밀리를 골라 주었지. 발가락이 춤을 출 정도였고 남의 발 하나를 더 넣어도 될 지경이었어. 가난은 사랑마저 부풀리게 하는 것임을 그때도 어림잡았는지 몰라. 대학물 먹고 직할시가 광역시 되고 아무도 신발 치수를 간섭하지 않을 때도 내 신발 치수는 줄곧 265밀리였어. 습관의 힘이었거나 발이 신발에 적응한 탓이었겠지. 이후 스무 해를 더 지나오는 동안 큰아이 신발 치수가 커 가는 데 비해 내 신발 치수는 265밀리에서 260밀리, 255밀리, 250밀리로 내려만 가. 그동안 부풀려 놓은 사랑이 조금씩 새어 나가면서 꿈에서조차 할매는 기척을 내는 법이 없어. 한때 달리기라도 할 것 같으면 운동화 끈을 한껏 조여야 했던 것처럼 오는 보름달을 기다려 느슨한 그리움의 줄을 당겨볼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