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어둠의 저 천근의 그림자/ 송문헌

톰소여와허크 2011. 2. 20. 23:50

 어둠의 저 천근의 그림자/ 송문헌

- 바람의 칸타타․63


지나간 시간과 걸어온 거리

길목마다 흩날리는 젖은 흔적 흔적들마다

떨고 있는 어둠의 저 천근의 그림자


눈을 감아야 비로소 선명히 떠오르는

너의 모습은 이렇듯 잠 못 이루는 밤이어야

조각달빛으로 찾아 올 수 있겠느냐


가을에서 다시 그 겨울 봄을 지나 세상은 온통

푸르고 저마다 야단법석들인데 여직 기별도

흔들림도 없는 너는 어느 바람 속에 머무느냐


찾아 나설 수도 만나 잡을 수도 없는 너는

한 걸음에 달려와 어느 캄캄한 귓가에 비로소

바람결, 귓속말로 내게 머물겠느냐

- 『바람의 칸타타』, 예맥, 2008.



- 어떤 존재나 대상, 혹은 가치에 대한 ‘상실감’이 시를 쓰게 하는 동력이란 이야기를 듣곤 한다. 생의 발랄한 면이나 기쁨보다는 어둡고 슬픈 내용의 시가 더 많이 씌어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위 시에서 화자에게 상실감을 주는 대상은 ‘너’다. ‘너’는 구체적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모호하지도 않다. 가까이는 화자 개인의 연인이나 벗일 테고, 좀 멀다 하더라도 화자가 지켜보거나 따랐던 사람일 게다.

  ‘너’는 “눈을 감아야” 더 선명해지고, 잠에서 깨어 “조각달빛”을 볼 때 연상되는 존재이다. 한 계절이 바뀌는 동안 ‘너’는 어떤 기별도 주지 않고, 화자와 ‘너’가 현실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차단되어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시는 ‘너’의 부재로 말미암아 한때의 관계와 인연이 다하는 것에 대한 비가이다. ‘천근’이 상실감의 크기라면, ‘그림자’는 현존으로 ‘너’와 대면할 수 없다는 사무친 정한의 표현이다. 머물지 못할 것을 번히 알면서도 소망하는 데서 쉽게 잘라낼 수 없는 인연의 뿌리를 절감하게 된다.

  시에서 종종 남의 상실감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서 형상화하기도 한다. 이때도 타인의 고통에 대한 시인의 정서적인 이끌림 없이는 독자에게 감동을 주긴 어려울 것이다. 정작 시에서 중요한 건 상실감의 유무나 겉으로 보이는 크기가 아니라, 얼마큼 내가 안았느냐, 얼마큼 절실하냐의 문제임을 알겠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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