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그림 '가족'
가족/ 윤제림
새로 담근 김치를 들고 아버지가 오셨다.
눈에 익은 양복을 걸치셨다.
내 옷이다, 한 번 입은 건데 아범은 잘 안 입는다며
아내가 드린 모양이다.
아들아이가 학원에 간다며 인사를 한다.
눈에 익은 셔츠를 걸쳤다.
내 옷이다, 한 번 입고 어제 벗어놓은 건데
빨랫줄에서 걷어 입은 모양이다.
- 『그는 걸어서 온다』, (주)문학동네, 2008.
* 재미를 주면서도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시 한 편을 읽는다. 시적화자는 아버지의 아들이며, 동시에 아들의 아버지이다. 화자의 양복은 아버지께 가고, 티셔츠는 아들에게 갔다. 한 번 입은 것이니 약간 서운할 법하다. 하지만 그걸로 그만이다.
아버지는 아들 옷을 입는 게 멋쩍고도 든든했겠다. 아내는 남편 옷을 입은 시아버지를 보고 씩 웃었겠다. 아버지 옷을 입고 나가면서 아들은 아무 스스럼없었겠다. 화자는 별 수 없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인다. ‘한 번 입은’ 옷을 강조하는 건 웃음을 유발하는 수사 이상은 아니다. 멋쩍어도, 얄미워도, 괘씸해도 곧 이해되는 게 가족이다. 작은 허물은 덮어가고 큰 허물도 용서하는 게 가족이다. 달님에게 소원을 빌 때 영순위가 가족의 안녕이다.
가족을 위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대한다면 세상은 훨씬 살맛 날 텐데, 현실은 옷 한 벌 거리도 안되는 소유와 그로 인한 다툼으로 시끄러울 때가 많다.
옷을 나누어 입기 위해서라도 아들아이하고 사이즈가 맞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내 더 큰 사이즈가 되어서 나를 서운하게 해 주기를.(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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