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cafe.daum.net/gypc 이재용님 작
외꽃 피었다/ 이대흠
꽃과 가시가 한 어원에서 비롯되었다는 글을 읽는 동안
지금은 다른 몸이 한 몸에서 갈라져나온 시간을 생각하는 동안
꽃을 사랑하는 일은 결국 가시를 품는 것이라는 것을 새기는 동안
꽃이 오셨다
어쩌지 못하고 물외처럼 순해지며 아픈 내 마음이여
줄기와 잎이 가시로 덮였어도 외꽃처럼 고울 그대에 대한 생각이며
견디지 못할 것 같았던 몸의 그리움을 마음의 그늘로 염하는 시간이며
- 『귀가 서럽다』, 창비, 2010.
* ‘가시버시’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가시’는 곧 여자이다. 여기에 ‘여자’는 곧 ‘꽃’이라는 등식을 받아들인다면 가시와 꽃과 여자는 동의어가 돼버린다. 그리하여 꽃을 사랑하는 일은 한 여자를 사랑하는 일이 되고, 한 여자를 사랑하는 일은 가시를 품게 되는 일이 된다.
또한 가시는 뾰족한 침이기도 해서 꽃에 쉽게 다가서지 못하게끔 한다. 온전히 꽃을 사랑하는 일은 가시까지 받아들여야겠으나 그 가시를 무시한 섣부른 사랑의 대가로 서로가 깊은 내상을 안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본다.
화자는 꽃이 피었다고 하지 않고, ‘꽃이 오셨다’고 했다. 어느 날 한눈에 들어온 꽃은 그 자체로 신비이며 외경의 대상이니까. 꽃은 그냥 온 게 아니고 시간과 공간을 앞뒤로 물리고 화자 내면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면서 귀하게, 높게 오신 것이다.
꽃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꽃을 꺾으려 드는 건 모순이고 위선이다. ‘몸의 그리움을 마음의 그늘로 염하는 시간’이야말로 ‘내 안의 가시’를 다스리는 일이고 마침내 꽃으로 벙그는 시간을 예비하는 일일 것이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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