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귀가/ 하종오
청년 때 참전하여
전장에서 만난 여자와 사랑하다가
혼자 한국으로 돌아왔던 사나이가
베트남으로 다시 돌아갔다
젊은 참전 용사에서
늙어 힘없는 중노인이 된
사나이는 수소문 끝에 여자를 찾고
그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사나이가 연애했을 적 그 나이가 된 아들이
그 시절 사나이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서
이 광경에서 고개 돌렸다
한국에서 본처가 죽고 나자
종전 이십여 년 만에
베트남으로 여자를 찾아간 사나이는
말없이 내주는 옆자리에 앉았다
늙은 연인이 될 수 있을까 사나이와 여자는
오토바이를 타고 햇볕 뜨거운 거리로 달려가는
젊은 아들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물끄럼물끄럼, 물끄럼, 물끄럼
- 『제국』, 문학동네, 2011.
* 6.25 때, 미 주둔군에 의해 태어난 미혼모 여성의 자녀를 국외로 빼가면서 해외 입양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다수의 미군은 한때의 연애를 치기나 낭만으로 간주하고 한국 여자와 그 사이에 태어난 아이를 책임지지 않았다. 아메리카 드림이 좌절된 여성은 밑바닥 인생을 전전했고, 입양되지 못한 혼혈아는 더 많은 박대와 차별에 시달려야 했다. 약소국의 정서와 인권은 존중될 필요가 없었다.
베트남 전쟁 시, 베트남 여성과 연합군 사이에 똑 같은 일이 되풀이되었다. 다만, 위 시의 ‘사내’는 옛 연애와 핏줄에 대한 미련이 있었는지 뒤늦게 (베트남 가정으로) 귀가한다. 여기서 어떤 보상을 내세워 어쭙잖은 화해를 말하는 건 베트남 모자에 대한 모독이다.
그저 ‘물끄럼물끄럼’ 있는 것이 그나마 윤리의식의 표출로 느껴진다. 계속되는 ‘물끄럼’이 사내의 입장에서는 ‘부끄럼’으로 읽히는 까닭이다.
이제 전쟁이 아니더라도 다국적 기업이 서고, 인종이 섞이고, 국제결혼이 예사롭게 이루어지는 사회가 되었다. 자본을 가진 쪽이라고, 얼마간 보상을 해주었다는 이유로 약자에 대한 차별을 당연시하고 있지는 않은지 묻게 된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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