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쇠똥을 굴리다/ 유현숙

톰소여와허크 2011. 6. 27. 17:09

쇠똥을 굴리다/ 유현숙



쇠똥을 파먹고 커서 그 속에다 알을 스는 쇠똥구리의 몸뚱이에서는

짓이겨진 풀 냄새가 납니다


나는 한때 별빛을 몸에 두르고 걸었습니다

별똥 흩어진 풀밭을 걷다가 별똥에 채여 넘어지곤 하던

그때 나는 별똥구리였던가요

갈기 세운 구름이 발굽소리 울리며 흐르고 내 안으로 바람 들이쳤던 적 있습니다

뒹굴고 부서지며 지평의 끝까지 날려갔던

그때 나는 바람구리였던가요

서쪽 하늘 아래에서 잘 익은 사과밭이 반짝이는 한나절

둥글게 햇빛을 굴리며 사과향기 가득한 언덕을 오르던

그때 나는 햇빛구리였던가요


당신의 말씀들을 모아 경단을 만드는 저녁나절

짓이겨진 풀 냄새와 별빛이며 바람이며 햇빛인 영혼을 파먹고 자랄

유충의 부화를 예감하는

쇠똥구리의 여름 저녁

  - 『서해와 동침하다』, 문학의 전당, 2009.


- 쇠똥구리는 이름에서 ‘쇠똥을 굴리다’라는 의미가 자연스레 연상된다. 화자는 쇠똥구리의 모습에서 자신 혹은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는 걸까. 삶은 자기 의지대로 뭔가를 굴리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자신이 뜻하지 않는 방향으로 제멋대로 굴려지기도 하는 것이니까. 채여 넘어지고, 뒹굴고 부서진다는 표현에서 그런 느낌을 받게 된다.

   ‘사과향기 가득한 언덕’은 평화로운 휴식이 있는 공간으로 읽히지만 더 많은 시간을 고단한 일상에서 보내게 될 것은 자명하다. 벗어날 수 없는 근원적 비극……, 그러니 어쩌란 말인가. 쇠똥구리가 쇠똥을 굴리듯, 시시포스가 바윗돌을 굴리듯 묵묵히 나아가는 수밖에 없지 않나.

  풀, 별빛, 바람, 햇빛은 삶의 과정에 부딪치게 되는 하나하나의 장면일 수도 있지만, 한 생명을 탄생시키고 단련시키기 위해 동원된 자연물로도 볼 수 있다. 쇠똥 굴리는 데 온 우주가 참여한다는 생태학적 상상력에도 생각이 가 닿게 되는 이유이다.(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