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집 오토바이의 행동반경에 대하여/ 유홍준
오늘은 장사 잘되기로 소문난 우리 동네
중국집 오토바이의
행동반경에 대하여 생각한다
배달 횟수가 아니라 행동반경에 대하여!
누가 아이를 키워
중국집 오토바이를 타게 하고 싶으랴
누가 아이를 키워 제 동네만 뺑뺑 돌게 하고 싶으랴
(하루에도 수백번, 제 동네를 도는 아이는
결국
정신이 돌 수밖에 없다는 속설……)
그러나 오토바이는 멋있고
자장면은 맛있고
저 중국집 오토바이가 없다면 안돼
나는 저 중국집 오토바이가 지나갈 때마다 꽁무니를 바라봐
행동반경이 좁다는 것은 뱅뱅뱅뱅뱅 돌아야 한다는 말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야 한다는 말
책 몰라 여행 몰라 취미 몰라
그런 건 다 몰라
오늘도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우리 동네 오토바이
- 『저녁의 슬하』, 창비, 2011
- 노동과 생산의 중요성은 여전하더라도, 그 못지않게 여가와 휴식에 대해서 고민하는 시대가 되었다. 닷새를 일하면 이틀을 쉬거나 노는 주5일제가 정착되어, 주말이면 행동반경을 교외로 넓히는 사람이 늘고 있다.
잘 산다는 의미를 돈보다 삶의 여유에서 찾는 사람이 늘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과 무관한 여유를 생각하기 힘든 것도 현실이다. 가난한 부모는 그들의 자식만큼은 가난한 골목을 가급적 멀리 벗어나 출세하기를 바랄 것이지만 누군가는 골목에 남아야 하고 누군가는 배달원이 되어야 한다.
중국집을 기점으로 행동반경이 사방 몇 킬로로 제한되어 있을 자장면 배달원의 모습에서, 반복되는 일상을 힘겹게 살아내는 단순 노동자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날렵해 보이는 중국집 오토바이에서, 삶의 여유를 갖지 못하는 노동자를 읽어내는 시선이 둔중하게 와 닿는 것이다.
배달 아저씨, 또 한편 이러기도 할 것 같다. 장사가 안 되니 멀리 나갈 여유가 없고, 장사가 잘 되니 바빠서 못 나가게 된다고. 그러니 여유를 누리는 데 서툰 것은 사회적인 이유가 크겠지만 인식의 문제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뱅뱅’, ‘뱅뱅뱅뱅뱅’ 한 자리만 도는 게 비단 중국집 오토바이만은 아닐 것이라는.(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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