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박쥐/ 이애리

톰소여와허크 2011. 7. 19. 15:54

박쥐/ 이애리


햇볕 한 뼘 비밀에 두고

깜깜한 어둠을 앞세워 외출한 걸 보면

아직은 생이 너무 젊다

삼흥동 달빛 번지까지 어떻게 온 걸까


모처럼 가족들 모여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는데

느닷없이 박쥐 한 마리가

동기간처럼 저녁 밥상에 앉는다

우린 밥숟갈처럼 휘둥그런 동공을 열며

일제히 박쥐다, 라고 외쳤다

첫 입맞춤을 나눈 천곡동굴 애기박쥐일까

속 깊은 할아버지는 창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살다 보면 복장 터지기도 하고

손해 보기도 하며, 억장과 맞닥뜨릴 때

푸른 햇살 한 줌이 호주머니에서

환해지면 좋겠다

- 『하슬라역』, 시와에세이, 2011.


-  달빛에 이끌려 정든 동네에 대어 갔다가 뜻하지 않게 북적이는 저녁을 맞이했나 보다. 아니면 소싯적 가족의 밥상 풍경을 회상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동기간처럼 저녁 밥상에 앉은” 박쥐!

  소스라치게 놀랄 만한 장면이면서도 슬며시 웃긴 것은 잠시마나 일상을 깨고 오히려 일상을 신나게 해주어서 이다. 한바탕 해프닝 후 일상은 더 평화로워지고 가족 간 유대는 더 끈끈해지리라. 침입자를 위해 창문을 열어주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가족공동체가 지향하는 세계를 여실히 보여준 것으로 볼 수 있다.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밥공기 나누듯 사랑을 나누고 배운 사람이 결국 그걸 밑천으로 어려운 시절을 견뎌낸다는 말로 풀이하고 싶다. “햇볕 한 뼘”, “햇살 한 줌”의 비밀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