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 일화(ㅂ-ㅇ)

박인로(1561~1642, 경북 영천)

톰소여와허크 2011. 8. 26. 10:40

박인로(1561~1642, 경북 영천)


아래는 이종찬의 글을 일부 줄인 것이다.


[ 내 몸에 걸친 옷이 어떤가 하니

백 군데나 기워서 누더기 옷이로다.

비록 해어졌을망정 무엇이 걱정이랴?

다만 오래도록 추구할 일을 바랄 뿐이네.


-노계 박인로, '안분음'(安分吟) 몇 토막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 1561~1642) 선생의 시조를 낮게 읊조리며 도계서원(영천시 북안면 도천리 4)으로 간다. 스스로 무하옹(無何翁)이라 부를 정도로 늘 찢어진 삿갓을 쓰고 직접 농사를 지으며 청빈한 삶을 살다간 박인로 선생의 혼이 담긴 도계서원.

  도계서원은 조선 선조 때 가사문학(歌辭文學)의 선구자였던 노계 박인로 선생의 위패와 문집이 있는 서원으로 봄 가을에 향을 피우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노계 선생은 조선 명종 16년, 서기 1561년에 경북 영천군 북안면 도천리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어릴 때부터 워낙 총명해 스스로 글을 알았고, 남이 글을 읽는 것을 들으면 모두 기억했다.

  그의 글재주는 임진왜란 때 태평사(太平詞)를 지어 사졸들을 다독인 것을 비롯해 그가 지은 선상탄(船上嘆), 사제곡(莎堤曲), 누항사(陋巷詞), 독락당(獨樂堂), 영남가(嶺南歌), 노계가(蘆溪歌) 등 여러 가사에 잘 드러나 있다. 게다가 선생은 부모상에 다같이 3년 씩 여묘(廬墓)를 살았을 정도로 효자이기도 했다.

  관광안내자료에 따르면 노계 선생은 임진왜란 때 의병활동에 가담했다가 무과에 등과하여 수군이 되어 벼슬길에 오른다. 이어 지금의 구조라 해수욕장이 있는 거제도에 만호로 부임해 선정을 베풀다가 전쟁이 끝난 뒤 고향인 영천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때부터 물질을 탐하지 않고 후학들을 가르치다가 82세로 삶을 마감한다.

  도계서원은 노계 선생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학덕을 존경하고 충효사상을 따르던 사림(士林)들에 의해서 세워졌다. 지금 이 서원에는 노계 선생의 문집을 인쇄한 목판각인 박노계집판목(朴蘆溪集板木, 유형문화재68호)이 보관되어 있다.


  막걸리 서너 잔에 목을 축인 나그네는 우선 자그마한 연못에 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아담한 도계서원으로 향했다. 전봇대만 없으면 좋으련만. 도계서원의 고풍스런 풍경을 흐트리고 있는 전봇대를 지나 보랏빛 쑥부쟁이가 예쁘게 피어난 연못 둑을 천천히 걸어가자 저만치 '조홍시가'가 적힌 노계시비가 나그네를 부른다.


반중(盤中, 소반 위) 조홍(早紅, 홍시)감이 고아도 보이나다.

유자(柚子)이 안이라도(아니라도) 품엄즉도(품을 법도) 하다마난

품어 가 반기리 업슬싀(품어가도 반가워해 줄 이 없으니) 글로(그것 때문에) 설워하나이다.


  나그네가 노계시비 앞에 서서 노계 선생의 삶을 되짚고 있을 때 시인 민영 선생과 서정춘 선생, 농민운동가 천규석 선생이 사진 한 장 찍어달라 한다. 문득 노계시비 앞에 선 세 분 선생의 모습이 노계 선생을 닮은 듯하다. 사진을 찍은 뒤 도계서원으로 올라서자 도계서원 안쪽 저만치 담장 아래 무하옹(無何翁)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듯하다.

  세상 물정에 어두워 무엇을 할 줄 모르는 늙은이라는 뜻을 가진 무하옹 박인로 선생은 정철, 윤선도와 더불어 조선 3대 시가(詩歌)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하긴, 노계 선생은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많은 9편의 가사(歌詞)와 시조 67수, 한시 110수를 남겼으니깐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선생은 평생 찢어진 삿갓을 쓰고 농사를 지으며 한 세상을 보냈다.

  특히 노계 선생의 고단한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누항사'의 한 구절을 읽다 보면 선생의 청빈한 삶에 절로 눈물이 핑 돈다. 농사를 짓기 위해 이웃집에 소를 빌리러 갔다가 소를 빌리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이 담긴 "헌 먼덕 수기 스고 측 업슨 집신에/ 설피 설피 물너오니 풍채 저근 형용에/ 개 즈칠 뿐이로다"라는 그 시조.

  이 시조를 읽다 보면 갑자기 마음까지 저려온다. 농사 지을 소도 빌리지 못한 채 짚으로 만든 멍덕(벌통 위를 덮는 뚜껑)을 깊숙이 덮어쓰고 굽도 없는 짚신을 끌며 맥없이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오는데, 골목길에서 개까지 자신을 보고 짖어대고 있으니. 그때 노계 선생의 심정은 얼마나 서글펐겠는가.

  노계 선생의 초라한 삶의 그림자가 일렁거리는 도계서원 마루에 앉는다. 그리고 도계서원 앞에 있는 자그마한 연못과 황금빛 들판을 오래 바라본다. 문득 연못 속에서 무하옹 노계 선생의 혼백이 갑자기 소를 몰고 나와 영천문학축전이 열리는 행사장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만 같다. 무대에 오른 노계 선생이 문학예술인들을 바라보며 시조를 읊조리는 것만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