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 일화(ㅂ-ㅇ)

오규원(1941-2007, 경남 삼랑진)

톰소여와허크 2011. 9. 23. 16:37

오규원(1941-2007, 경남 삼랑진)

 

아래는 황해령의 글이다.


[  ‘오규원만큼 치열한 자의식을 갖고 자신의 언어를 날카롭게 벼려, 시를 통해 언어 철학적 수준에까지 도달한 시인은 흔치 않았다.’ -오연경-


  3월 13일 유화로 그린 겨울 풍경 같은 이른 봄날, 오규원 시인의 고향으로 향하는 시심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현상’과 ‘날 이미지의 시’, 모더니즘적인 시, 비판정신, 아이러니, 패러디의 끝없는 실험정신……. 이는 시인이자 교육자였던 오규원 선생을 일컫는 수식어다. 그러나 시를 어렵게 끌어가는 소통불능의 시와는 다르다. 일상적이고 서정적인 자연을 소재로 형상화한 시는 잘 읽힌다. 그뿐만 아니라 아름다우며 정답고 신선하면서 때론 웃게도 하는데, 이는 시인이 나고 자란 고향과도 무관하지 않으리란 생각에 그 답을 고향에서 찾아보고 싶었다.

  삼랑진 용전리 직전 마을 입구에 자리한 생가터 앞에 서자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매화가 담장에 서서 반긴다. 40년 전에 헐린 생가터 새집 대문이 굳게 잠겨 있다. 당시 20여 호 중에 절반을 차지했다는 해주 오씨도 모두 떠난 상태다. 여느 농촌과 다름없는 동네 돌담길을 따라 걸으며 시인에게 고향은 어떤 의미였을지 곰곰이 떠올려본다.

  선생은 부산사범학교와 동아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도 시인의 길을 택했다. 추천을 통해 현대문학으로 등단,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20년간 재직하다 2007년 지병으로 타계했다. 저서로는 1971년 ‘분명한 사건’을 첫 시집으로 2005년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까지 10여 권의 시집을 비롯하여 동시집, 시전집, 시론집, 시 창작이론집, 수필집, 산문집을 남겼다.

  나무, 강, 새, 풀, 돌멩이, 창공을 나는 새……. 자연이 주인인 동네에 시인의 시어들이 널려 있다. 양지쪽 부풀어 오른 빈 밭에는 성급한 냉이꽃 광대나물꽃 큰개불알꽃이 자리다툼 하듯 어우러져 눈웃음 짓는다. 시인에게는 이 모두가 그리움이었을 것이다.

  부드러운 능선들이 둥글게 품은 작은 동네가 시인이 자연과 더불어 성장기를 보냈음을 짐작하게 한다. 확 트인 앞산 전망도 좋지만, 소 먹이러 다니던 뒷동산도 아늑해서 정겹게 다가온다. 아이들의 여름날 놀이터가 되어주던 개울이 동네 양쪽으로 두 군데나 흐르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당시 친인척으로 구성된 동네에서 6남매 중 막내로 자라서 고향에 대한 추억도 남달랐으리라.

  각 고개를 넘어오다 돌아보니 시인의 고향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때는 시인에게 우주였을 공간. 학창시절 ‘부산문우회’에서 활동하면서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선생은 이 각 고개를 넘어 삼랑진초등학교를 다녔고, 부산사범학교 시절은 자전거로 고개를 넘어 삼랑진역에서 기차를 이용하기도 했다.

  선생은 신경숙, 함민복, 황인숙, 하성란, 이진명, 천운영, 편혜영, 장석남, 윤성희, 강영숙, 박형준, 백민석…… 등, 오늘날 한국 문학에 중추적인 역할을 맡은 문인을 길러 낸 사실로도 유명하다. 또한, 문학창작의 자료로, 학위 논문, 평론가들의 연구대상으로 선생의 시는 꾸준히 사랑받고 있으며 현대문학상, 미당 문학상, 연암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아문인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 잎의 여자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병신 같은 여자, 시집 같은 여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어린 시절 뛰어놀던 뒷동산에 물푸레나무는 올봄도 잎을 틔우건만…….

  오규원 시인의 고향은 밀양이다. 밀양이 오규원 시인의 고향이어서 자랑스럽다. 강화도 전등사 옆에 수목장을 지낸 ‘오규원 시인의 나무’에는 제자 문인들과 선생을 추억하며 찾는 발길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아래는 상허학회에서 쓴 내용을 일부 발췌한 것이다.


[  시인 오규원은 경남 밀양군 삼랑진읍 용전리에서 1941년 부친 오인호와 모친 고계준의 육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다. 그는 이곳에서 열두 살까지 비교적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내다가 초등학교 6학원 때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고향을 떠나 중학시절부터는 형제와 친척들의 집을 전전한다. 그는 이런 뿌리 없는 생활에서 오는 허기와 친척들의 집을 전전한다. 그는 이런 뿌리 없는 생활에서 오는 허기와 결핍 의식을 풍부한 독서로 메우는 한편 중학 3학년부터는 시를 써보기 시작한다.

  사범학교 시절 문학잡지와 시집을 탐독하기 시작하는데 이때 김수영,김춘수,전봉건 등의 시를 만나게 된다. 사범학교 졸업 후 1961년 부산의 사상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한다. 이듬해 동아대 법학과(2부)에 지원했는데 법학을 통해 그는 말 또는 표현의 불명확성과 애매성 추상성 등을 체험하게 됨으로서 언어에 대한 사유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1965년「현대문학」에「겨울나그네」가 김현승 선생에게 추천되면서 문단생활을 시작하는데 이때 본명인 오규옥을 필명 오규원으로 바꾸게 된다. 이후 1967년에 「우계의 시」로 2회 추천,1968년 「몇개의 현상」으로 추천 완료를 받음으로써 정식으로 시단에 입문한다.

  1970년부터는 김병익,김현 등 문지그룹과 만나기 시작하였으며, 1971년 첫 시집 「분명한 사건」,「순례」에 실린 시들과 개봉동 연작시들을 포함하여 시선집 「사랑의 기교」를 출간한다. 1976년에는 시에 관한 산문들을 모은 시론집 「현실과 극기」를 출간하며, 1978년에는 세 번째 시집「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를 낸다.

  1981년에는 이듬해 현대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네 번째 시집 「이땅에 씌어지는 서정시」와 에세이집「한국만화의 현실」, 「볼펜을 발꾸락에 끼고」 등을 출간하는 활력적인 작업을 보여준다. 1983년에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의 전임교수가 된다. 같은 해에 시론집 「언어와 삶」을 출간하며,1984년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문예창작의 교육 가능성과 그 실제를 연구한「전문대학 문예창작과 교육과정 연구」를 펴낸다.

  1987년 문학선집「길밖에 세상」을 펴내며,1989년에는 연암문학상을 수상하고, 수상 작품집「하늘 아래의 생」이 출간된다. 1987년 다섯 번째 시집 「가끔은 주목받은 생이고 싶다」에 이어 1990년 사례연구와 시적 언술의 특성에 관한 연구서인 「현대시작법」을 펴낸다.

  1991년 여섯 번째 시집「사랑의 감옥」이 출간된다. 한편 같은 해 그는 폐포들이 점차로 파괴되어 호흡에 곤란을 가져오게 만드는 만성폐쇄성질환(폐기종)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어 요양을 위해 강원도 인제를 거쳐 1993년 여름부터는 무릉에 머물렀는데 이곳 생활의 흔적이 일곱 번째 시집「길,골목,호텔 그리고 강물소리」와 산문집「가슴이 붉은 딱새」에 녹아 있다.

  1996년 4월 무릉을 떠난 그는 산속에 파묻힌 마을 서후라는 곳으로 요양지를 옮긴다. 1997년에는「순례」복간본이 출간되었으며,1998년에는「한잎의 여자」가 시선집으로 출간되었다. 여덟 번째 시집인「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를 통해 날이미지의 투명함을 보여준 그는 최근에는 학기 중에는 일산의 자택에서 방학 때는 서후에 머물면서 시작(詩作)활동을 하고 있다.

  2002년 8권의 시집과 동시집「나무 속의 자동차」를 함께 수록한 「오규원 시전집」1,2가 만들어졌으며, 동시대 비평가들이 그의 시 세계에 대해 분석,평가하고 있는「오규원 깊이 읽기」가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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