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한 병이 공짜/ 임희구
막 금주를 결심하고 나섰는데
눈앞에 보이는 것이
감자탕 드시면 소주 한 병 공짜란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삶이 이렇게 난감해도 되는 것인가
날은 또 왜 이리 꾸물거리는가
막 피어나려는 싹수를
이렇게 싹둑 베어내도 되는 것인가
짧은 순간 만상이 교차한다
술을 끊으면 술과 함께 덩달아
끊어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 한둘이 어디 그냥 한둘인가
세상에 술을 공짜로 준다는데
모질게 끊어야 할 이유가 도대체 있는가
불혹의 뚝심이 이리도 무거워서야
나는 얕고 얕아서 금방 무너질 것이란 걸
저 감자탕 집이 이 세상이
훤히 날 꿰뚫게 보여줘야 한다
가자, 호락호락하게
- 『소주 한 병이 공짜』, 문학의전당, 2011.
* 어떤 것을 작정한 대로 끝까지 밀고나가는 사람을 다시 쳐다보게 되고, 또 그런 사람이기를 바라지만 자신의 일은 시작의 굳은 다짐과 달리 끝은 흐지부지되기 일쑤다. 이를 선의로 해석하자면 남에게든 자신에게든 모질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질지 않아서 웬만한 것은 수용하고, 웬만한 것은 포기할 테니 세상 다툼이나 마음속 갈등을 줄이는 데는 분명 일조했을 것이다.
모질지 못한 화자에게 술이 공짜라는 사실은 “금주”와 “술을 끊으면 술과 함께 덩달아/ 끊어야 할 것”사이의 팽팽한 대립에서 후자 쪽으로 급속히 무게 추를 돌려버린다. 술을 끊으면 손해날 일이 뭘까? 현진건은 <술 권하는 사회>에서 “이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며 푸념했다. 사회가 나로 하여금 본정신에는 살 수 없게끔 강제하고 있는데, 정작 본인은 “금주” 선언에 괴로워만 한다면 이런 손해가 또 있겠나 싶다.
술을 푸게 하겠다는 감자탕 집 혹은 세상 혹은 상대의 의도를 다 알고 “호락호락” 넘어가 주겠다는 데에서 오히려 호락호락하지 않은 시인의 반골 기질이 느껴지지만, 술자리만큼은 모질지 않은 사람끼리 모여서 “싹수” 있거나 없는 세상에 대해서 모질게(?) 이야기해 보고 싶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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