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사랑가1/ 이경록

톰소여와허크 2011. 12. 8. 09:12

사랑가1/ 이경록


  그대 며칠 전 팔백 리 밖 아화阿火 안말에서 띄워 보낸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오늘 아침 동남풍과 함께 닿아 내 몸의 숨구멍을 타고 흘러 들어오다. 흘러 들어와 그 말의 숨결이 내 심장의 피 덥히며 온몸을 흐른다. 팔백 리 밖 사람아, 그대 사랑한다는 말의 하늘 길로 또 내 말을 보낸다.


  오늘밤 금강이나 추풍령 상공에서 내 말은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소리치며 떠 헤매 가리라. 잠 못 들고 뒤척이는 이 나라의 사랑하는 마음들아, 한 마디씩 씨 받아 팔 괴고 잠들어라.

 -  『나는 너와 결혼하겠다』(요절시인 시전집4), 새미, 2007.


*  시인에게 ‘아화’는 사랑의 추억이 간직된 장소이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머물고 있는 고장으로 보인다. 그 ‘아화’에서 부친 “사랑한다는 말”이 “하늘 길”을 지나 “내 몸의 숨구멍”으로 들어오고, “내 심장의 피”를 덥힌단다. 이 표현이 환상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느낌으로 와 닿는 건 사랑이란 느낌이 꼭 그럴 것 같아서다.

  받은 사랑만큼 또 그 이상으로 더워진 마음을 전하려 시인은 “하늘 길”로 답신을 보내는데 그 사랑이 공중에서 꽤나 시끄럽다. 사랑하는 마음, 그 사랑을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이니, 배달 사고가 나도 아무렇지도 않겠다.

  씨 하나가 생명을 건사하듯이 말의 씨 하나가 좋은 인연과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들기도 할 것이다. 작고 시인의 소망대로 “사랑한다”는 말의 씨가 땅에서 공중에서 마구 발아하기를 나도 같이 꿈꿔 본다. (이동훈)

 

이경록 시인의 고향인 경주 다산리의 귀래정(사진, 김형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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