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착한 자영업/ 정원도

톰소여와허크 2011. 10. 21. 13:11

착한 자영업/ 정원도



어머니 낡은 스웨터의 터진 손목처럼

제때 결제 안 해주면

빚이 되는 것이 두려워


그 빚 같아 나가는 데만 신경쓰다보면

자영업자의 일 년은 겨울 곶감처럼

금방 바닥난다


나무들이나 풀들의 살림도

딱 그런 자영업이다

땀 흘려 잎을 피우고, 꽃을 피워

맺은 열매 다시 땅으로

바람에 다 날려 보내는 것이


미리 꾸어다 쓴 햇볕이나 바람에게

땅에게, 구름에게

재빨리 갚아나가는

착한 자영업자의 마음이다


-『귀뚜라미 생포 작전』, 푸른사상사, 2011.


* 일부 행세하는 사람은 빚도 척척 잘도 내고, 사업도 키우고 재산도 불리지만 다수의 서민은 빚이라면 겁부터 난다. 빚은 가급적 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갚아야 할 부담 때문이다. 세간의 일들을 접하다 보면, 빚 독촉이 화살촉보다 무섭다는 생각도 든다.

  영세한 자영업자는 빚 안 내고 사는 게 대수다. 빠듯한 살림에 세금 내고, 수수료 빠져나가면 겨우 자영(自營)하는(생계를 제힘으로 잇는) 정도이다.

  그러나 갚지 않아도 독촉하거나 청구하지 않는 빚도 있다. 자식에겐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 어머니의 사랑이 그런 것일 테고, 풀 나무에겐 성장을 도와 준 햇볕, 바람, 땅, 구름의 역할이 그럴 것이다. 그러니 세상의 모든 존재는 혼자 잘 나서 잘 난 게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 다른 무언가에 빚지고 지금까지 왔다고 해야겠다. 이를 인정하고 갚으려는 행위가 “착한” 마음의 발로일 것이다.

  나무와 풀은 제가 가진 것을 땅으로 돌림으로써 빚을 갚아나간다지만 사람은 어찌해야 하나. 빚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지만 빚에 대한 의식이 아주 없는 건 더욱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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