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록, 시인의 서랍, 한겨례출판, 2012.
- 시인의 산문집이다. 시인의 시, 상당수는 어머니의 말이 그대로 옮겨진 모양이다. 안방에 모여든 동네 아주머니의 이야기도 시가 된다. “이야기 있는 곳으로 내 귀가 간다. 귓구멍이 어두운 것은, 눈코 문드러진 이런저런 얘기들을 깜깜하게 잘 버무리란 뜻이 아니겠는가”라는 말에서 이야기가 있는 시에 대한 시인의 지향과 그 이야기를 어떻게 형상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함께 읽을 수 있다.
시인의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 중, ‘고무신’에 대한 이야기는 퍽이나 인상적이다. 또래보다 일찍 학교에 가 괴롭힘을 당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고무신을 빼앗기고 수수 빗자루에 입술까지 데이는 혹독한 아픔을 겪으면서 캄캄했던 터널을 서서히 빠져나오게 된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보살핌도 있었지만, 남의 고무신을 거꾸로 훔친 위악이 한몫을 했고, 고무신 대신 신었던 방한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한 시절을 온통 어둠으로 만드는 ‘힘’이란 게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는 깨달음을 전한다.
시인은 군 시절, 특수한 임무를 부여 받는다. 원고지 다섯 장을 내어주고, 파리를 잡아서 원고지 칸에 붙이라는 명령이다. 시인은 두어 번 깨지기는 했지만 결국 성공적으로 일을 해냈다. 좀 우습기는 해도 작가의 길을 예고한 것이리라. 원고지 채우는 데 비상한 재주를 증명해 보였으니.(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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