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사다리 / 남대희

톰소여와허크 2013. 1. 11. 11:59

 

사다리 / 남대희

 

 

마른 이마를 기대고 기울어져 보지만

당신은 언제나 벽입니다

 

마디마디 창을 내고

세상을 내다보아도 온통 벽입니다

 

환한 들판을

철길처럼 달리고 싶다가도

조금 다른 모양 때문에 포기하고 맙니다

 

한 칸 한 칸 밟고 올라간 다락방에서

하늘 큰 창 열어젖힙니다

 

큰 창 너머 북극성이 불꽃같이 걸려 있습니다

-월간 《우리詩》 2012년 10월호

 

 

  사다리는 어느 지점까지 오르내릴 수 있도록 만들어진 도구다. 시를 읽다 보면, 사다리의 그런 용도와 함께 모양새도 연상되게끔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사다리는 또한 이쪽과 저쪽을 연결하는 만남과 소통의 의미로도 생각해 볼 수 있겠는데, 그런 기능이 무색하게, “당신”은 “벽”으로 존재하고 있다. 사다리가 벽에 기대어 있는 모습에서 일차적인 연상이 있었겠지만, 벽을 “당신”이라고 이름 붙인 순간, 소통의 부재라는 새로운 의미로 확장되는 것이다. 화자는 불편한 이 상황을 타개하고 쭉 뻗어가고 싶지만 “조금 다른 모양” 때문에 포기하고 만다. 이 역시 사다리와 철길의 모양 차이가 일차적으로 떠오르지만, ‘나’와 “당신”의 “조금 다른” 차이로 돌려 생각할 여지를 준다. 조금 다르다는 것이 소통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결정적 차이로 작용하고 있지만, 말 그대로 “조금 다른” 그래서 얼마든지 극복 가능한 차이일 수도 있다.

  이처럼 이 시는 사다리의 생김새에서부터 인식의 폭을 넓혀 가더니 타자와의 관계에까지 상상이 미치도록 독자에게 사다리를 태우고 있다. 특히, 사다리를 지나온 다락방에서 북극성을 맞이하는 장면은 누구나 꿈꾸었을 법한 소망스런 세계의 모습이다. 꿈꾸는 공간, 새로운 지평을 여는 도구로 사다리의 쓸모는 상한가를 기록한다. 그 과정에 “벽”을 넘으려는, 소통을 원하는, 더 나은 관계를 지향하는, 더 멋진 세계를 그리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음을 사다리는 전하고 있다.

  남대희 시인으로부터 건너온 사다리를 이쪽에 대었으니 한동안 넘나드는 데 문제없을 걸로 나는 믿고 싶다. 그래도 아래로 쏙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된다면, 그건 아마도 이편과 저편의 문제가 아니라 사다리가 그렇게 생겨 먹은 탓이리라.(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