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수종사 무료 찻집 / 박몽구

톰소여와허크 2013. 2. 9. 09:31

 

수종사 무료 찻집 / 박몽구

 

 

만만한 평지 다 버리고

누가 나서서 하필이면

마파람 한 올에도 까치집처럼 흔들리는

가파른 산꼭대기에 절집을 틀었을까?

황토 먼지로 한치 앞 아득한 산길 오르며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게

사람 몸인 줄 비로소 알 것 같다

한 생애 마친 듯 산길 굽이돌며

등과 배꼽이 맞붙는 적막학 식욕

눈앞에 비틀거리는 아지랑이 어른거려서야

깨진 기왓장 위에 민들레 무성한 산문

빼꼼하게 귀 내민다

이제, 돌아갈 아득한 길 달래며

봄가뭄 걱정에 잠 못 이룬 채 모로 누운

정약용 유택 훤히 내려다보이는

수종사 무료찻집에서 봄볕을 부신다

찰랑거리는 찻물 따라 흔들리는

서어나무 마른 잎새에서

두물머리의 상처를 읽는다

남녘 칠백리 북녘 삼백리

한 걸음 헤쳐 나갈 때

돌부리에 핏빛 어깨 맡기고

두 걸음 나갈 때

뱃가죽에 뜨겁게 온몸 실어

막힌 길 한쪽을 터왔다고

정약용 목민심서 책장 넘기는 소리 빌어 귀띔해 준다.

저렇듯 빛깔과 몸피가 다른 강줄기들도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 줌으로

몸 활짝 열어 하나가 되는 것

눈물겹지 않느냐고

봄물 절 마당에 백 지게쯤 풀어놓는다

상처라곤 속으로 감춘 채 서울로 치닫는 강줄기

거저 굵어진 줄 알고

둑 터지듯 빈말 마구 뱉은 뒤

등 돌린 선거철 공약 다 안고 서해로 간다

금방이라도 세상을 바꿀 것 같은 큰소리들

한낱 포말 되어 흩어지는 산 아래를

부스럼을 다스리러 왔다가 들른 세조가 심었다는

오백 살 은행나무가 굽어보고 있다

새로 돋은 잎으로 적신 저녁놀 한 잔 마신다

- 『수종사 무료 찻집』, 시와문화,

 

*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를 한눈에 조망하는 위치에 수종사가 있다. 정약용이 어린 시절과 유배 해제 후 말년을 보냈던 곳이 지척에 있으며 그의 무덤 자리도 절 아래 있다. 목민(牧民)의 마음(心)은 컸으나 목민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던 시절, 그의 삶만큼 가파른 이곳을 정약용이 자주 들렀다고 한다.

  수종사 무료 찻집에 앉은 시인은 먼데 눈을 주면서 강줄기를 봤을 테고  “막힌 길 한쪽을 터왔다”는 점에서 정약용의 삶 역시 강줄기를 닮았다고 생각했을 법하다. 하지만 강줄기는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 줌으로/ 몸 활짝 열어 하나가 되는 것”이지만  남의 상처를 예사로 볼 경우 “빈말”과 “큰소리”를 내다가  쉽게 사그라지기도 하는 것임을 생각하게 한다.  수종사에 인연이 닿으면 은행나무 아래로 가야겠다. ‘그윽한 만날 약속 어찌 다시 그릇 되리’(幽期寧再誤 - 정약용의 <游水鐘寺>에서)를 읊으며 “저녁놀 한 잔” 나누어 마신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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