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내 고양이는 지금 어느 골목에 있을까 / 김충규

톰소여와허크 2013. 1. 12. 06:44

내 고양이는 지금 어느 골목에 있을까/ 김충규

 

 

몇 해 전, 비 오는 어슬어슬 겨울 골목에서

몸은 떨고 있었으나 눈빛은 전혀 흔들리지 않던

그 고양이,

나는 몸은 안 떨었으나 눈빛은 흔들렸다

 

- 너, 내 고양이 할래?

내가 했던 혼잣말,

사람에게 좀 지쳐 있었던 내게

사람이 아닌 벗이 필요했는지도…

 

사람을 지치게 하는 것은 사람이다;

고양이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손으로 등을 어루만지기만 해도

제 혀로 내 손등을 부드럽고 미세하게 핥아줄 것이다

달팽이의 젖은 혀 같을 느낌,

 

- 너, 내 고양이 할래?

내가 흔들리는 눈빛을 간신히 수습하며 바라볼 때

고양이가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빤히 나를 바라보았다

- 너, 내 사람 할래?

그 눈빛에 그런 메시지가 들어 있다고 착각하고 싶었던,

내 앞에서 그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던,

그 고양이,

우리는 비에 젖어서

마를 사이도 없이 젖어서

 

(둘이…각자의 생활 영역을 벗어나 멀리 멀리 걸어가고

싶었다, 물론 고양이도 원한다면)

 

너는 네 혀로 내 손등을 핥든 안 핥든

나는 내 혀로 네 발등을 핥든 안 핥든

그리 한 번쯤 서로의 곁이 되어보고 싶었던,

 

지금, 어디 있니? 내 고양이

-『아무 망설임 없이』, 문학의전당, 2010.

 

* “사람에게 좀 지쳐”서 “멀리 멀리 걸어가고 싶었다”는 시인에게서 문득,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며 산골로 가고자 했던 백석이 생각난다. 자포자기나 도피일 수도 있는 백석의 선택이 낭만적으로 와 닿게 되는 이유는 ‘나타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는 ‘나타샤’ 자리에 ‘고양이’를 둔다. 그렇다고 동화적이거나 낭만적인 느낌을 주는 건 아니다. 비에 젖는 몸과 흔들리는 눈빛의 잔상이 그런 느낌을 차단하기 때문일 거다.

  사실, 아니 올 리 없다는 나탸사는 시인의 기대를 배반할 가능성이 있지만 “고양이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라고 시인은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쪽의 기대와 바람이 간절하다고 해서 저쪽의 반응도 항상 그러라는 법은 없다. 그런 저쪽을 존중해 주어야 하지만 자기 마음을 수용하고 지지해 줄 누군가를 그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이 꽉 차 있는 사람은 남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곁을 준다는 말은 자신의 자리를 줄여서 상대의 자리를 마련해 준다는 의미로 새겨볼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의 곁을 잠시 머물렀다 간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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