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월 / 배영옥
어머니는
먼 남쪽으로 밥 지으러 가서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식은 아랫목은 다신 데워지지 않았다
식구들끼리 달라붙어
서로 몸 뒤채며
체온을 나눠 가지다가 문득,
달그락달그락 그릇 씻는 소리에
문 열고
마당 내다보니
차고 맑은 우물 속
어린 동생에게 밥 한 술 떠먹이고 싶은
고봉밥그릇이 떠 있었다
-『뭇별이 총총』, 실천문학사, 2011.
* 식구(食口)는 ‘먹는 입’이다. 입을 대고 같이 밥을 먹는 사이다. 식구들이 남들 먹는 것처럼 먹고 살기 위해선 어머니 자리가 절대적이다. 먹는 것을 마련해서 먹는 입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존재, 행여 입에 들어가는 게 시원찮으면 저를 대신해서 걱정하는 존재가 어머니일 것이다.
아이들에게 평등하다는 것은 어머니가 있다는 사실이고,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으면서 그 평등은 깨진다. 남은 식구들이 “달라붙어” 어머니의 부재를 감당하려 하지만 허기증과 결핍감은 어쩔 수 없을 것이고, 자기 입에 들 것을 스스로 자구(自救)하며 일찍 철드는 쓸쓸함도 있을 것이다.
먹는 입을 잊지 못해 어머니가 달님으로 오셨을까. 우물에 비친 달의 모습은 고봉으로 환하고 또 아프다. 먹는 입을 기뻐하고 걱정하는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를 기억하는 화자의 마음처럼.(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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