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성과 이쾌대 / 이동훈
대구 계산동 성당 맞은편의 사내
성당의 뾰족탑을 재던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고흐도 좋고 고갱도 좋지만 이인성은 이인성이어야 해.
광기로 그린 오베르 성당의 유혹을 떨치듯
성당의 벽과 지붕을 반듯반듯 그리고*
고갱의 강렬한 원색 대신 지역 흙 빛깔인 적색을 섞어 그렸지.
문제는 성당 앞, 감나무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나무줄기가 구불텅구불텅 휘어진 것은
고흐의 사이프러스 나무가 이인성의 감나무에 씐 것일까.
계산동 언덕을 내려와, 거울 앞에 선 사내
소매를 걷고 자화상을 그리는 중이야.**
다빈치도 좋고 푸생도 좋고
팔레트 든 고흐도 세잔도 마네도 다 좋아하지만
이쾌대는 이쾌대이어야 해.
불안하게 옆을 보는 고흐 자화상과 다르게
자의식의 그늘 짙은 이인성 자화상과 다르게
서글서글한 얼굴 뒤로
야트막한 언덕, 낯익은 길, 나무, 집, 사람,
푸른 하늘, 그 색을 빼닮은 두루마기까지 참으로 시원해.
고흐에게든 인성에게든
이쾌대 저도 예까지 왔다는 자랑이 이리 넘치는 거지.
감나무 줄기를 생으로 비튼 이인성도
뜬 구름을 꽈배기처럼 틀어버린 이쾌대도
밋밋한 생을 제대로 흔들어 보기 위해서 일까.
요절한 천재는 말이 없고
계산동 언덕엔 모루구름 피었다 고개 꺾고.
* 이인성, <계산동 성당> (1930년대 중반).
** 이쾌대, <자화상> (1940년대 후반). 두 사람은 계산동에서 멀지 않은 대구 수창초등학교를 같이 졸업(1928년)한 인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