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해리 오층모전석탑* / 이동훈
우리 한 번은 만나요. 돌 틈의 씀바귀 갸웃대는 날 겨울 자작나무처럼 앙상했을 당신은 쪽배 띄워 흔들흔들 오세요. 절벽 그림자가 뱃머리를 밀어내면 밭머리 지나 허허한 벌로 아주 오래전부터, 제자리에서 꿈쩍 않는 석탑 아래로 오세요. 소용 닿지 않는 말은 버리고 기단 아래 쪼그려 앉기로 해요. 내가 말없이 냉이만 꺾는대도 당신이 낯없이 잔돌만 그러낸대도 서둘러 일어서지 않기로 해요. 주위가 어둑해진 다음에야 서로의 모습을 다 익힌 다음에야 감실에 허물 남기고 떠난 뱀처럼 자취 없이 사라지기를요. 세월이 또 흘러 마지막 겨울일 것 같으면 인적 끊긴 벌판을 생각하세요. 추운 나라 쓸쓸한 거인 같은, 오래 되어도 여전한 석탑 아래 숫눈 밟는 기쁨으로 약속 없이 만나지기를요.
* 영양군 입암면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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