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바리데기에게

톰소여와허크 2014. 3. 7. 01:46

 화가 김동성 作

 

바리데기에게 / 이동훈


길러준 기억을 갖기도 전에
그녀는 집을 나갔어.
버스 안의 그녀에게 꽂힌 아이는
신작로 먼지바람에도 꼼짝 않으며
사라지는 것들을 향해 물음표로 서 있었을 거야.
보채고 치근대는 버릇을 일찍 떼고
울음을 안으로 쟁여놓은 아이는
생이별로 흔들렸을 그날의 백양나무 가지처럼
외곬으로 웃자라기만 했어.
그녀와 그녀를 떠나게 한 운명에게
볼멘 입을 비죽이며
해 쨍한 날엔 담 그늘 밑에서
바람 소리 유난한 날엔 정지 문에 기대어
낳아준 탓을 시시로 외며 지나온 거야.
그러다가 너를 만났어.
버림받고도 낳아준 은혜만도 크다고 말하는 너.
너로 인해 뼈살이 없이 뼈가 다시 서고
피살이 없이 피가 새로 돌아.
공연한 기대도, 쓸데없는 원망도
해 뜨고 바람 부는 사이
사부작사부작 내려놓는 중이야.

 

- 월간 <우리시>, 2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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