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 사진관집 이층 / 신경림
사진관집 이층에 하숙을 하고 싶었다.
한밤에도 덜커덩덜커덩 기차가 지나가는 사진관에서
낙타와 고래를 동무로 사진을 찍고 싶었다.
아무 때나 나와 가차를 타고 사막도 바다도 갈 수 있는,
누군가 날 기다리고 있을 그 먼 곳에 갈 수 있는,
어렸을 때 나는 역전 그 이층에 하숙을 하고 싶었다.
이제는 꿈이 이루어져 비행기를 타고
사막도 바다도 다녀봤지만, 나는 지금 다시
그 삐걱대는 다락방에 가 머물고 싶다.
아주 먼 데서 찾아왔을 그 사람과 함께 누워서
덜컹대는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낙비 소리를 듣고 싶다.
낙타와 고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싶다.
다락방을 나와 함께 기차를 타고 싶다.
그 사람이 날 찾아온 길을 되짚어가면서
어두운 그늘에도 젖고 눈부신 햇살도 쬐고 싶다.
그 사람의 지난 세월 속에 들어가
젖은 머리칼에 어른대는 달빛을 보고 싶다.
살아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첫날을
다시 그 삐걱대는 사진관집 이층에 가 머물고 싶다.
- 『사진관집 이층』, 창비, 2014.
* 역전 사진관은 도심과 변두리의 경계에 있을 것 같고, 거기서 사진을 찍는 손님은 도심에서든 변두리에서든 그 둘을 오가든 일상에 발목 잡혀 좀처럼 “사막도 바다도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사막과 바다를 사진 배경으로 쓰는 이유도 이와 무관해 보이진 않는다.
그런데 시인은 왜, 사진관집 이층 다락방에 세 들기를 바라는 건가. “낙타와 고래”에 대한 꿈을 꿀 수 있어서 인가. “덜컹대는 기차 소리”가 자신을 어디론가 실어가기도 하고 “그 사람”을 실어오기도 하기 때문인가. “아주 먼 데서” 오는 “그 사람”은 과거의 사람이기도 하겠지만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그리움으로도 읽힌다. "그 사람"이 시인에게 꿈을 꾸게 하고 영감을 주는 존재인 것은 분명하다.
사진관집 이층은 아직 영업 중일지 모르겠지만 어떤 사진도, 심지어 시인도 “그 사람”을 온전하게 찍어 두지는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이동훈)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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