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강구안 풍경
나폴리 소녀 / 정채균
편지가 인연 되던 시절
충무에서 불어온 갯바람은
치악산봉우리 잔설 녹이고
서툰 글씨 주인공 찾아
초행길 떠난 말년휴가
원문고개 넘어서서
첫눈에 반한 한려해상
품에 안으려던 욕심은
밤새 물거품 되고
해 돋는 남망산 올라
코피만 쏟았지
청마우체국 소인 빛바래고
다시 찾은 강구안에
주황깃발 변함없이 나부끼는데
도다리쑥국 제철이라는
갈매기 호객소리
- 『빨랫줄에 걸린 소망』, 문학공원, 2014.
* “편지가 인연 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오가던 정이 결실하는 경우는 드물었을 것이고 한때의 추억으로 정리되곤 했을 것이다. 펜팔 속 연인을 찾아 나선 화자도 부푼 기대감이 물거품이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낯선 고장의 풍물과 한려해상의 아름다움과 훗날의 시 한 편을 안고 왔으니 소득이 전혀 없었던 것 아니다.
통영(199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충무는 통영이 됨)은 백석이 연정을 품고 몇 번 다녀갔던 곳이기도 하고, 유치환이 말로는 전하지 못했던 사연을 편지에 꼭꼭 채워 우체국으로 뻔질나게 출입했던 곳이기도 하다.
통영은 빼어난 풍광으로 동양의 나폴리로 불리기도 한다. 나폴리는 안 가봤지만 내 생각엔 통영보다 나을 것 같지는 않다. 백석에게 상실감을 주고, 시인에게 추억을 준 통영과 나폴리 소녀를 생각하다 보면 빛의 부스러기가 나풀나풀 날리는 기분이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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