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1950년대 풍으로 / 김석규

톰소여와허크 2014. 4. 10. 11:07

 

김상용 화백 작

 

1950년대 풍으로 / 김석규

 

항구의 불빛으로 밤도 깊은 광복동에

아련히 젖어오는 그 옛날의 사랑

연기로 사라지는 청춘의 탄식인가

눈물에 젖어 떠난 여인의 얼굴

비워도 비워도 술잔에 차올라

불빛 하나 둘 꺼져가는 남포동에

돌아서서 흐느끼는 슬픈 그림자

아직도 남아 있는 세월의 상처인가

꺾어 던져버린 장미는 시들고

희미한 추억이 빈잔에 떠올라

 

- 『별빛 아래서』, 푸른별, 2014.

 

* 1950년대 부산 광복동과 남포동은 피난민으로 북적이던 시기다. 가족과 생이별하고 안부를 묻는 것조차 힘이 들었을 시절, <굳세어라 금순아>가 공전의 히트를 치기도 했다. 수많은‘금순이’와 그의 가족, 그의 연인과의 이별이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보편적 상처와 맞닿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을 피해 살아남은 사람은 지난 이별을 추스를 사이도 없이 생계 문제로 가족과 또 다시 헤어지기도 한다. 아내를 일본으로 보내고 실의의 날을 보내던 화가 이중섭이 떠올려지는 장면이다.

  이처럼 사랑과 이별과 그로 인한 고통은 생생한 현실이지만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는 조금씩 신파적이 되어 눈물도 내면서 삶의 무게로부터 한 발짝 비켜서는 거리도 생겼을 것이다. 그래서 ‘1950년대 풍으로’등장하는 “항구의 불빛”, “그 옛날의 사랑”, “청춘의 탄식”, “세월의 상처”, “희미한 추억”으로 이어지는 낭만적 포즈는 그 시대의 미덕이며 지금도 여전한 호소력을 갖고 있는 줄 안다. 낭만에는 아픔이나 상처를 환기하되 그 아픔을 다독이는 힘이 있다.

  “아직도 남아 있는 세월의 상처”를 추억하는 청춘의 “빈잔”에 술 한 잔 따르고 싶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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