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부연이 삼촌 / 도경회

톰소여와허크 2014. 4. 24. 13:18

부연이 삼촌 / 도경회

 

거위 등을 타고 온종일 놀던 아재가 보이지 않았다

한국전쟁 때 주워온 탄피를 아궁이에 넣었다가

새끼손가락과 함께 얼이 반쯤 달아난 막내삼촌

유령이 휘휘휘 돌아다니는 나른한 밤

먼저 강기슭 더튼 후 어른들 산으로 올라갔다

횃불 앞서고 초롱 뒤따르며

너럭바위 밑까지 샅샅이 더듬었다

아침 해가 뜨고 나서야

가파른 산중턱 바위병풍 그 좁은 틈에

꾹꾹 쟁여 밀어 넣은 그를 찾을 수 있었다

도깨비의 조화지 사람 솜씨는 아니라고들 수군거렸고

까무룩 눈도 못 뜨는 삼촌이 업혀 왔다

그 밤에 웃담으로 갓 시집온

풍뎅이 다리같이 새까맣고 굵은 속눈썹의 새댁

제삿밥 이고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공동묘지 배롱나무 꽃 환한 샛길마다

나물 메 점점이 흩어져 있었다

 

- 『말을 걸었다』, 도서출판 움, 2014.

 

* 이야기가 있는 시 한 편이다. 인과가 분명치 않은, 조금 덜 이야기한 듯한 구성이 오히려 궁금증과 흥미를 유발한다.

   거위 등을 타고 놀던 어수룩하고 순진한 삼촌이 왜, 그 밤에 병풍바위 틈을 비집고 들어갔는지, 하필이면 왜, 또 그 밤에 새댁이 사라졌는지 수수께끼다. 진실은 유령도 모르고, 수수께끼의 모범 답안이란 있을 수 없다. 각자의 상상력에 따라, 이야기는 동화로도 갈 수 있고, 엽기로도 갈 수 있을 것이다.

   오래된 마을은 수수께끼와 전설 속에 더 신비롭고 풍성해진다. 은밀하거나 공공연한 비밀이 있어 마을은 생기가 돈다. 시인은 그런 비밀스런 이야기를 맛나게 들려주는 존재이기도 할 것이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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