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할매 걱정 / 김성훈

톰소여와허크 2014. 4. 22. 19:07

할매 걱정 / 김성훈

 

놓을 것 다 놓으셨는데

아직 남은 큰 걱정 하나

 

나 죽어 하늘나라 가는 것

조금도 걱정되지 않고 반가운데

나 죽어 하늘 오르면

저 누렁이 누가 돌보나

내가 주는 밥 아니면 입도 대지 않을 텐데

 

할매 죽어 하늘나라 가기 전

누렁이 먼저 죽는 게 낫다고

누렁이 장사 치러 주고 할매 하늘나라 가야 한다고

할매의 커다란 걱정 하나 남아

하늘나라 오르실 날 잡지 못하고 계신다고

 

식탐 많은 누렁이

죽어서 개 아닌 사람 되어 태어나라고

얻어먹는 사람으로 태어나지 말고

실컷 먹을 수 있는 식당 주방장으로 태어나라고

 

할매 진한 걱정

누렁이는 아는지 모르는지

편한 잠 들어 있다 할매 바로 앞에서

 

- 『할매 바람』, 도서출판 천우, 2013.

 

* 시집 한 권이 온전히 ‘할매’에 관한 이야기다. 하늘나라가 가까운 할매의 걱정은 자식보다 누렁이다. 자식이야 어떻게든 살겠지만 누렁이는 챙겨 줄 사람이 마땅찮은 거다. 자식들이 직장을 얻어 나가고 도심에서 가정을 이루면서, 고향과 부모에 대한 유대가 희미해져가는 현실을 반영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집안과 마을이 서로 넘나들고 이웃 간에 대소사를 같이 해왔던 농촌공동체의 와해는 이 시대의 보편적 현상이 되었기에, 할매도 별다른 미련을 보이지 않는다.

   도시가 비대해질수록 농촌은 비고, 인심도 예전 같지 않지만 할매의 정만큼은 여전하다. 멀리 있는 아들딸, 손주에 대한 사랑은 물론이거니와 가까이 있는 미물에게도 마음이 미친다. 정은 서로 간에 오가는 것이니 할매가 누렁이 걱정하듯이 누렁이도 할매 걱정한다. 낮잠에서 “깨지 않는 할매에 걱정 커진 누렁이/ 침 잔뜩 발라 할매 얼굴 핥”(<할매 낮잠>) 다가 콧잔등 한 대 맞기도 할 때, 이 장면을 할매의 고독과 연결시킬 것 같으면 희극적으로만 읽히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시인은 심각한 것은 피해간다. 누렁이에게 “얻어먹는 사람으로 태어나지 말고/ 실컷 먹을 수 있는 식당 주방장으로 태어나라”는 해학적인 당부로 상황을 넘기는 것인데, 그것은 ‘할매’가 환기하는 따뜻함의 정서가 워낙 강해서 일 것이다.

   할매의 고독이 할매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점점 시대의 풍경으로 익숙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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