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 / 이시향
너만을 고집하고
너만을 사랑하고
너만을 믿었어도
꼭 필요할 땐 나오지 않는
너와 닮았구나
- 시화집『마주보기』, 창연출판사, 2014.
*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란 제목으로 글을 쓸 때다. 학생 한 명이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면서 막 답이 나오려고 하는데, 샤프심이 나오지 않을 때”라고 적었던 기억이 있다. 반은 농담조로 읽히는 이 슬픔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건 아니었을까.
<만년필>도 그렇다. “너만을” “고집하고/ 사랑하고/ 믿었어도” 너는 내 맘 같지 않아 내 사랑과 내 필요에 응하지 않을 때가 있다는 거다. “꼭 필요할 땐 나오지 않는/ 너”가 야속하겠지만 너의 마음과 너의 형편과 너의 한계를 살피지 않은 이쪽의 불찰에도 생각이 미쳐야 할 줄 안다.
‘만년필’이란 이름도, 지나친 기대에 말미암은 지독한 과장이다. 대략 ‘삼년필’ 정도로 불러준다면 서운한 일이 줄어들지 모른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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