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나무
사진 출처 :http://cafe.daum.net/seedshare/HOsW/11207?q=%B9%E9%C7%D5%B3%AA%B9%AB%20%B2%C9&re=1
꽃나무의 미열 / 이규리
한 줄 문틈을 그은 불빛이 빗장 같아
불 켜진 아이 방 앞에 서서
늦은 시각을 벌컥 열지 못하겠다
자주 먼 곳을 향하는 아이를 훔쳐볼 때
슬그머니 끼이던 낯선 공기
백합나무도 제가 피운 꽃등은 못 보겠지
내가 짚어볼 수 없는 저 아이의 미열은
이제 나무의 것일까
아버지가 그립지만 같이 있고 싶단 뜻은 아니에요
그건 내 말이었다
꽃들이 언제 피어야 할지 가지에게 물은 적 없듯이
저 아이의 새벽, 스탠드 불빛은
쓸쓸한 먼길인지 모른다
언제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방문 열고 나오는 아침이 있고
그러면 나는 또 짐짓 이마를 짚으며
음, 음, 날씨 얘기나 꺼낼지도 모른다
-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문학동네, 2014.
* <우리는 그곳을 2층이라 부른다>에서 먼저 이야기했듯이 백합나무 꽃은 위를 향하고 있어 밑에서 좀처럼 볼 수 없단다. 그래서 2층이나 옥탑방에서 눈을 맞추게 되는데, 꽃등을 단 모습이 인상적이었나 보다.
“백합나무도 제가 피운 꽃등”을 못 볼 때가 있는 것처럼 어머니도 “아이의 미열”을 예전처럼 챙겨주기가 어려워질 때가 있다. 백합나무의 꽃들은, 어머니의 아이는 지금까지 직면하지 못했던 낯선 세계에 있다. 미열을 내려주었던 스스로 떠안았든 간에 아이는 자기만의 한 세상을 가지고 혼자 앓고 혼자 빛을 낼 것이다. 부모 세대가 그랬듯이 “쓸쓸한 먼길”에 발을 디뎌 놓은 것이고, 그 길을 헤쳐 나가는 것은 자신의 몫일 테다.
꽃나무가 미열을 앓으면서도 환한 꽃등을 다는 모습을 그려본다. 아이도 미열을 겪으며 한 그루 듬직한 나무가 되어 저를 닮은 꽃을 또 피워낼 것이다. 언제 백합나무를 만날 때, 그때가 2층이면 좋겠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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